건강식 연어의 배신?…훈제 연어, 발암물질 '주의보'

 심혈관 질환 예방과 두뇌 건강에 탁월한 효능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연어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식재료다. 하지만 연어를 조리하고 가공하는 방식에 따라 오히려 건강에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나왔다. 특히 샐러드나 샌드위치 등에 널리 활용되는 훈제 연어의 경우, 가공 과정에서 인체에 치명적인 발암 물질이 생성될 수 있어 섭취 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식품화학 분야의 권위자인 리즈대학교 소속 이돌로 이피에 박사는 연어를 연기에 그을려 익히는 훈제 과정에서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라는 유해 화학물질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 물질은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대표적인 발암 원인 물질 중 하나다. 이피에 박사는 이러한 유해 물질이 체내에 고농도로 축적될 경우 심각한 건강 상의 문제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식단에서 훈제 식품의 비중을 의식적으로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학계에서는 훈제 방식이 유해 물질 생성에 미치는 영향을 입증하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지난 2024년 국제 학술지 '디스커버 푸드'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동일한 종류의 육류나 어류를 일반적인 방식으로 불에 구웠을 때보다 훈제 방식으로 가공했을 때 PAHs의 검출 농도가 훨씬 높게 나타났다. 이는 연기를 이용한 가공법 자체가 유해 물질 노출 위험을 높이는 근본적인 원인임을 시사한다.

 

훈제 과정에서 PAHs가 대량으로 생성되는 원리는 식재료가 가진 지방 성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연어처럼 지방 함량이 높은 식품을 훈제하면, 조리 과정에서 녹아내린 기름이 불꽃이나 열원에 떨어지면서 불완전 연소를 일으켜 짙은 연기를 발생시킨다. 이때 연기 속에 포함된 발암 화합물들이 다시 위로 솟아올라 음식의 표면에 고스란히 달라붙게 되면서 유해 물질의 농도가 급격히 짙어지는 것이다.

 


발암 물질 외에도 훈제 연어가 가진 또 다른 문제점은 높은 나트륨 함량이다. 보존성을 높이고 풍미를 더하기 위해 가공 과정에서 다량의 소금이 첨가되기 때문에, 이를 과다 섭취할 경우 고혈압이나 심혈관계 질환의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영국 레딩대학교 식품영양학과의 제인 파커 교수는 건강한 성인의 경우 체내에 유해 물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존재하므로 훈제 연어를 완전히 배제할 필요는 없지만, 하루 섭취량을 100g 이내로 제한하고 주 1회 이하로 먹는 것이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가공 방식에 따른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연어 자체가 지닌 영양학적 가치는 여전히 높게 평가받는다. 연어에는 체내에서 합성되지 않는 필수 지방산인 오메가-3, 그중에서도 DHA와 EPA가 매우 풍부하게 들어있다. 이 성분들은 뇌 신경세포의 막을 튼튼하게 구성하고 노화로 인한 뇌세포의 염증 반응을 억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연어의 영양분을 안전하게 섭취하기 위해서는 훈제보다는 찌거나 삶는 등 유해 물질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건강한 조리법을 선택하는 것이 권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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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