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 나선 김건희 여사 뒤늦게 알려져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폭염 속에서 서울의 한 쪽방촌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한 사실이 알려졌다. 행복나눔봉사회에 따르면, 김 여사는 8월 23일 서울역 인근의 쪽방촌을 방문해 봉사자들을 격려하며 4시간 동안 쓰레기를 줍고 실내 청소 및 도배 작업에 참여했다.

 

김 여사는 주민들과의 만남에서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하다"며 작은 도움을 지속해서 실천할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코로나19 재유행에 따라 쪽방촌의 방역 시스템이 취약하다고 판단해 방역 장비와 물품 지원을 약속했다.

 

그는 이 외에도 보육원, 요양원, 독거노인 지원 및 고독사와 청소년 자살 예방 캠페인 등 다양한 취약 계층 지원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봉사회에 따르면, 한 주민은 김 여사가 직접 청소하고 도배하는 모습에 감동했다고 전했으며, 다른 봉사자는 김 여사의 모습이 자신에게도 봉사 의지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김 여사의 이러한 활동은 지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주민들과 봉사자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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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군 수천 명이 스러져간 비극의 다리, 그곳의 현재

여러 이름이 붙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이 다리가 품고 있는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곳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돌다리 중 축조 연대가 명확히 밝혀진 가장 오래된 다리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전설에 따르면 이 다리는 1273년 고려 원종 시절, 법천사의 고막대사가 도술을 부려 놓았다고 전해진다. 75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수많은 홍수와 자연재해를 견뎌냈으며, 최근의 기록적인 폭우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켜 그 견고함을 증명했다. 투박한 외형과 달리, 마치 두부를 자르듯 거대한 돌을 자유자재로 다듬어 서로 맞물리게 한 선조들의 건축 기술이 돋보인다.과거 이 다리는 함평과 나주를 잇는 유일한 통로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길이었다.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의 희망과, 괴나리봇짐을 멘 상인들의 땀방울이 이곳에 스며있다. 한때는 소금과 생선을 실은 배가 드나들던 큰 포구였고, 쌀을 가득 실은 우마차가 다닐 만큼 넓고 튼튼했지만 영산강 하굿둑 건설 이후 옛 모습은 상당 부분 사라졌다.고막천은 단지 만남과 희망의 공간만은 아니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당시, 나주성 공략에 실패하고 퇴각하던 농민군이 관군에 쫓겨 이곳까지 밀려왔다. 하필 밀물 때라 강을 건너지 못한 수많은 농민군이 힘없이 스러져간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당시의 참상을 말없이 지켜봤을 200년 수령의 팽나무가 지금도 천변에 서서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원래 20미터가 넘는 길이를 자랑했으나, 일제강점기 보수 과정에서 홍수로 3분의 2가량이 유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현재는 남아있는 옛 돌다리에 콘크리트 다리가 이어져 본래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없는 상태다. 다리를 놓았다는 고막대사의 이름에서 유래한 고막마을과, 고려 시대 관원들의 쉼터였던 고막원의 흔적이 다리 주변에 남아있다.오늘날 고막돌다리 주변은 주민과 방문객을 위한 휴식 공간으로 가꿔져 있다. 천변을 따라 단아한 산책로가 조성되었고, 한 주민이 기부한 땅 위에 지어진 ‘고막정’이라는 정자가 운치를 더한다. 또한, 2005년 함평 지역 폭설 피해 복구를 돕고 돌아가다 순직한 공무원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져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또 다른 의미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