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살인마' 정체, 140년 만에 밝혀졌다

 19세기 런던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의 정체가 드디어 밝혀졌다. 140년 만에 공개된 DNA 분석 결과에 따르면, 그는 폴란드 출신의 23세 이발사 코스민스키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뉴욕포스트는 영국의 저명한 역사가이자 작가인 러셀 에드워즈가 진행한 DNA 분석 결과를 상세히 보도했다. 에드워즈는 2007년 경매에서 잭 더 리퍼의 피해자 중 한 명인 캐서린 에도우스의 혈흔이 묻은 숄을 구매했는데, 이 증거물이 140년 된 미제 사건의 실마리가 된 것이다.

 

당시 런던의 이스트엔드 지역, 특히 화이트채플 일대는 극심한 빈곤으로 매춘이 성행하던 곳이었다. 잭 더 리퍼는 1888년 8월 31일부터 11월 9일까지 단 70일 만에 최소 5명의 매춘부를 잔혹하게 살해했다. 피해자들은 메리 니콜스(43세), 애니 채프먼(47세), 엘리자베스 스트라이드(44세), 캐서린 에도우스(46세), 그리고 가장 젊었던 메리 제인 켈리(25세)였다.

 


에드워즈의 연구팀은 에도우스의 후손들로부터 DNA 샘플을 제공받아 숄에 남아있던 혈흔과 정액의 DNA를 분석했다. 더불어 용의자로 지목됐던 코스민스키의 후손들 역시 진실 규명을 위해 자발적으로 DNA 샘플을 제공했다. 분석 결과, 숄에서 발견된 정액의 DNA가 코스민스키의 것과 일치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코스민스키는 1880년대 폴란드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이발사였다. 그는 당시 연쇄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됐으나,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해 체포되지 않았다. 그는 이후 1919년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이번 DNA 분석 결과 역시 완벽한 증거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조사에 사용된 DNA 샘플이 법적으로 신뢰성을 인정받지 못했고, 연구 결과가 공신력 있는 과학 저널에 게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발견은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미제 사건 중 하나인 잭 더 리퍼 사건의 실체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23세라는 젊은 나이의 이발사가 저지른 잔혹한 연쇄 살인이라는 점에서, 당시 빅토리아 시대 런던의 어두운 이면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주는 증거로 여겨지고 있다.

 

여행핫클립

동학농민군 수천 명이 스러져간 비극의 다리, 그곳의 현재

여러 이름이 붙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이 다리가 품고 있는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곳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돌다리 중 축조 연대가 명확히 밝혀진 가장 오래된 다리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전설에 따르면 이 다리는 1273년 고려 원종 시절, 법천사의 고막대사가 도술을 부려 놓았다고 전해진다. 75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수많은 홍수와 자연재해를 견뎌냈으며, 최근의 기록적인 폭우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켜 그 견고함을 증명했다. 투박한 외형과 달리, 마치 두부를 자르듯 거대한 돌을 자유자재로 다듬어 서로 맞물리게 한 선조들의 건축 기술이 돋보인다.과거 이 다리는 함평과 나주를 잇는 유일한 통로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길이었다.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의 희망과, 괴나리봇짐을 멘 상인들의 땀방울이 이곳에 스며있다. 한때는 소금과 생선을 실은 배가 드나들던 큰 포구였고, 쌀을 가득 실은 우마차가 다닐 만큼 넓고 튼튼했지만 영산강 하굿둑 건설 이후 옛 모습은 상당 부분 사라졌다.고막천은 단지 만남과 희망의 공간만은 아니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당시, 나주성 공략에 실패하고 퇴각하던 농민군이 관군에 쫓겨 이곳까지 밀려왔다. 하필 밀물 때라 강을 건너지 못한 수많은 농민군이 힘없이 스러져간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당시의 참상을 말없이 지켜봤을 200년 수령의 팽나무가 지금도 천변에 서서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원래 20미터가 넘는 길이를 자랑했으나, 일제강점기 보수 과정에서 홍수로 3분의 2가량이 유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현재는 남아있는 옛 돌다리에 콘크리트 다리가 이어져 본래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없는 상태다. 다리를 놓았다는 고막대사의 이름에서 유래한 고막마을과, 고려 시대 관원들의 쉼터였던 고막원의 흔적이 다리 주변에 남아있다.오늘날 고막돌다리 주변은 주민과 방문객을 위한 휴식 공간으로 가꿔져 있다. 천변을 따라 단아한 산책로가 조성되었고, 한 주민이 기부한 땅 위에 지어진 ‘고막정’이라는 정자가 운치를 더한다. 또한, 2005년 함평 지역 폭설 피해 복구를 돕고 돌아가다 순직한 공무원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져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또 다른 의미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