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에 왜 칠면조를 먹을까?…알고 나면 더 맛있는 유래

 미국의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는 에이브러햄 링컨은 노예해방이라는 역사적 업적 외에도 의외의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남긴 인물이다.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연방의 분열을 막고 민주주의의 상징이 된 그이지만, 한 소녀의 편지를 받고 구레나룻을 길렀다는 일화처럼 소탈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나는 유산 중 하나가 바로 매년 추수감사절마다 열리는 '칠면조 사면 행사'다. 이 행사는 링컨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 아들이 정성껏 돌보던 칠면조를 차마 식탁에 올릴 수 없어 백악관 뜰에서 계속 키우도록 허락한 작은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훗날 1989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 일화를 재현하면서 칠면조 사면은 백악관의 공식적인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고, 사면된 칠면조는 동물원에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게 된다. 한 위대한 지도자의 따뜻한 마음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흥미로운 전통을 만들어낸 것이다.

 

칠면조가 북미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의 상징이 된 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1620년경, 종교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영국 청교도들은 낯선 땅에서의 첫 수확을 감사하며 신에게 예배를 드렸다.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되었는데, 당시 이 신대륙에는 영국에서 명절 음식으로 즐겨 먹던 거위 대신 야생 칠면조가 매우 흔했다. 자연스럽게 칠면조는 추수감사절 식탁의 주인공이 되었다. 특히 칠면조는 10kg에 육박할 정도로 덩치가 커서 온 가족이 모여도 부족함 없이 나눠 먹을 수 있었기에 대가족 중심의 명절 문화에 안성맞춤인 식재료였다. 이렇게 시작된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통째로 구운 칠면조 요리와 그레이비소스, 으깬 감자 등은 미국인들에게 추수감사절을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소울 푸드가 되었다.

 


이처럼 북미 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칠면조 요리는 한국인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도전하기 어려운 음식으로 여겨진다. 재미교포나 유학생들을 통해 미국 식문화가 알려지면서 이름은 익숙해졌지만, 실제로 맛보기는 쉽지 않다. 코스트코와 같은 대형 유통매장에서 거대한 냉동 칠면조를 마주하면 그 크기에 압도당하기 일쑤다. 설령 큰맘 먹고 구매한다 해도 요리 과정이 만만치 않다. 10kg에 달하는 칠면조가 통째로 들어갈 만한 대형 오븐을 갖춘 가정이 드물고, 빵과 채소 등 다양한 재료를 다져 속을 채우는 '스터핑'을 만드는 과정 또한 보통 일이 아니다. 미국 야구장에서 야구방망이만 한 칠면조 다리 구이를 파는 것을 보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듯, 일반 가정에서 선뜻 시도하기에는 여러모로 장벽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결국 칠면조 요리에 대한 부담감은 새로운 대안을 찾게 만든다. 굳이 거대한 칠면조를 고집하기보다 우리에게 훨씬 친숙한 닭이나 오리를 활용해 추수감사절 분위기를 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깍둑썰기한 빵 조각과 각종 채소로 스터핑을 만들어 닭이나 오리의 속을 채운 뒤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에 통째로 구워내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특별한 요리가 완성된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핵가족화가 진행된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도 대가족이 모이는 경우가 줄면서 칠면조 대신 닭고기와 같은 다른 육류로 명절 음식을 대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명절이 지나면 남은 칠면조 고기를 활용한 레시피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인데, 이는 명절 후 남은 전으로 찌개를 끓여 먹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지며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소소한 공감대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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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고향이 왜 '소금 도시'?…잘츠부르크에 숨겨진 비밀

. 과거 바다였던 곳이 지각 변동으로 융기하며 형성된 고산지대의 소금 지형이 대표적이다. 미국 유타주의 솔트레이크시티는 그레이트솔트 호수와 로키산맥 사이에 광활한 소금 평원을 자랑하며, 남미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은 비가 내리면 하늘을 비추는 거대한 거울로 변해 수많은 이들의 여행 버킷리스트에 이름을 올린다. 고구려 동명성왕이 소금을 채취했다고 전해지는 티베트의 소금산 역시 인도 대륙이 유라시아 대륙과 충돌하며 바다가 솟아올라 만들어진 경이로운 자연의 산물이다.유럽 대륙에서는 땅속 깊은 곳에 숨겨진 암염이 도시의 운명을 바꾸었다. '소금'을 의미하는 'Sal'과 'Hal'이라는 어원을 이름에 품은 도시들이 그 증거다. 모차르트의 고향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는 '소금의 성'이라는 뜻처럼 거대한 소금 광산을 기반으로 번영을 누렸다. 같은 나라의 할슈타트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로 손꼽히지만, 그 본질은 수천 년 역사의 소금 광산 도시다. 1만 2천 년 전 인류의 거주 흔적이 남아있는 이 고대 도시에서는 배를 타고 땅속 호수를 건너고 리프트와 열차를 타며 광산을 탐험하는 독특한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여행객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폴란드의 비엘리츠카 소금광산이나 독일의 소금 동굴 치료 시설 역시 소금이 만들어낸 이색적인 관광 자원이다.바닷물을 이용해 소금을 생산하던 염전 지대 또한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새로운 관광지로 거듭났다. 세계 최고 품질의 천일염을 생산하는 프랑스 게랑드 염전 인근에는 유서 깊은 항구도시 낭트가 자리 잡아 시너지를 내고 있다. 육지에 갇힌 바닷물이 오랜 세월 증발하며 형성된 이스라엘과 요르단 국경의 사해는 일반 바다보다 훨씬 높은 염도 덕분에 물에 몸을 맡기면 저절로 떠오르는 신비한 부력 체험으로 명성이 높다. 고대 잉카제국의 지혜가 깃든 페루 살리나스의 계단식 소금밭 역시 험준한 산악 지형과 어우러져 독특하고 장엄한 풍경을 연출하며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소금의 흔적은 비단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땅 곳곳에도 소금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 그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서울의 염창동(鹽倉洞)과 염리동(鹽里洞)은 과거 소금 창고와 소금 상인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었음을 이름으로 말해주고 있으며, 강원도 정선의 염장봉(鹽藏峰) 역시 소금을 보관하던 곳이라는 유래를 품고 있다. 이처럼 소금은 인류의 생존을 책임졌던 필수 자원을 넘어, 오랜 시간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역사가 빚어낸 독특한 문화 경관을 형성하며 오늘날까지 그 중요성과 가치를 다채로운 방식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