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SA도 놀란 '달의 비밀'...10분 만에 생긴 '공포의 협곡'

 지구의 그랜드캐니언이 형성되는데 수백만 년이 걸린 반면, 달의 거대 협곡들은 단 10분 만에 만들어졌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미국 국립과학원 산하 대학우주연구협회(USRA)의 달과 행성연구소 연구진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발표한 이 연구는 달의 지형 형성 과정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연구진은 NASA의 달 정찰궤도선이 촬영한 고해상도 사진들을 면밀히 분석했다. 특히 달 표면의 3D 이미지를 생성하고, 협곡을 따라 분포한 분화구와 파편들의 방향성과 이동 속도를 정밀하게 계산했다. 그 결과 슈뢰딩거 협곡과 플랑크 협곡이라는 두 개의 거대 협곡이 놀라울 정도로 짧은 시간에 형성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두 협곡의 규모는 실로 압도적이다. 슈뢰딩거 협곡은 길이가 270km에 달하고 깊이는 2.7km에 이른다. 플랑크 협곡은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길이 280km에 깊이가 3.5km나 된다. 이는 지구의 그랜드캐니언(길이 446km, 깊이 1.9km)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규모다.

 


약 38억 년 전, 지름 25km의 거대한 소행성이 달의 남극 부근과 충돌하면서 이 모든 것이 시작됐다. 이 충돌로 인해 지름 320km의 거대한 슈뢰딩거 충돌구가 형성됐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암석 파편들이 시속 3,200km라는 믿기 힘든 속도로 달 표면을 강타했다. 이 파편들의 충격으로 인해 두 개의 거대 협곡이 순식간에 형성된 것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 협곡들의 형성 시간이다. 연구진의 계산에 따르면, 이 모든 과정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지구의 그랜드캐니언이 500~600만 년에 걸쳐 콜로라도 강의 침식 작용으로 형성된 것과는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협곡들을 만든 에너지의 규모다. 연구진은 이 에너지가 현재 전 세계가 보유한 핵무기의 130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연구는 NASA의 아르테미스 계획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연구진은 충돌로 인한 파편들이 달의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는 NASA가 계획 중인 우주인 착륙 지점이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인류의 달 탐사 계획에 있어 매우 고무적인 발견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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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살던 궁궐이 일본인 아이들 놀이터로…충격적인 경희궁의 민낯

수행하며 역사의 중심에 섰던 서궐(西闕)의 위용은 간데없고, 현재는 이름에 터만 남았다는 의미의 ‘경희궁지(慶熙宮址)’로 불리며 도심 속 공원으로 인식될 뿐이다. 복원이 시작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정전인 숭정전 일대를 제외하면 드넓은 잔디밭이 옛 건물의 흔적을 대신하고 있어 궁궐의 고유한 정체성마저 희미해졌다.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명성에 가려져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힌 이 비운의 궁궐은, 그 황량한 터 곳곳에 식민과 분단의 아픔, 그리고 권력의 무상함이 새겨진 우리 근현대사의 축소판과도 같은 공간이다.경희궁이 겪은 수난의 역사는 궁궐의 정문이었던 흥화문의 기구한 여정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 본래 동쪽을 바라보며 위엄을 뽐내던 흥화문은 일제강점기,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찰 박문사의 정문으로 팔려나가는 치욕을 겪었다. 심지어 그 위치는 명성황후 시해에 항거하다 순국한 이들을 추모하던 장충단 바로 곁으로, 조선의 국왕이 드나들던 문을 민족의 원수를 기리는 공간의 입구로 삼아 왕실의 존엄을 철저히 짓밟은 것이다. 해방 후 박문사가 헐리고 그 자리에 신라호텔이 들어서면서 호텔 영빈관의 문으로 사용되다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경희궁 복원 사업과 함께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궁궐터의 상당 부분이 도시에 편입된 후라 원래의 자리를 되찾지 못하고 엉뚱한 도로변에 세워지며 뒤틀린 역사의 상흔을 고스란히 증언하고 있다.궁궐 내부의 훼손은 더욱 처참했다. 경희궁 터에는 식민지 시기 일본인 자녀를 위한 경성중학교가 들어섰고, 궁궐의 심장부인 숭정전은 교사로, 너른 궁궐터는 아이들의 운동장으로 전락하며 왕조의 상징적 공간은 완벽히 능욕당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현재 경희궁에 복원된 숭정전이 원본이 아닌 복제품이라는 점이다. 진짜 숭정전 건물은 일제강점기 일본 사찰에 팔렸다가 해방 후 동국대학교 교내에 그대로 남아 현재 ‘정각원’이라는 이름의 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왕의 어좌가 놓여있던 가장 존엄한 공간에 불상이 모셔진 모습은 경희궁이 겪어야 했던 역사의 비극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지붕 위 잡상들만이 이곳이 한때 궁궐의 정전이었음을 희미하게 알릴 뿐, 본래의 위엄을 잃어버린 채 이질적인 공간으로 남은 것이다.경희궁의 파괴가 오직 일제의 만행 탓만은 아니라는 점은 우리를 더욱 씁쓸하게 만든다. 왕실의 권위를 세운다는 명분으로 경복궁을 중건하던 흥선대원군은 경희궁의 수많은 전각을 헐어 그 자재를 사용했으며, 이는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괴는 어리석은 행위였다. 여기에 일제는 패망 직전 미군의 폭격에 대비한 거대한 방공호까지 건설하며 궁궐터를 군사 시설로 이용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오늘날에도 궁궐터에는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특별시교육청 건물이 버티고 서 있어 완전한 복원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잊힌 궁궐 경희궁은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을 잃고, 외세와 내부의 요인으로 철저히 파괴된 채 우리에게 진정한 역사 복원이란 무엇인지 무겁게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