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판 '터미널'…기니 남성, 김해공항서 5개월간 햄버거만 먹고 버텼다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터미널' 속 이야기가 2024년 대한민국 공항에서 현실이 됐다. 정치적 박해를 피해 고국 기니를 떠나온 한 30대 남성이 입국을 거부당한 채 무려 5개월 동안 김해국제공항 출국대기실에 갇혀 지낸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그는 지난 4월 27일 김해공항에 도착해 곧바로 난민 신청을 했지만, 법무부는 심사할 가치조차 없다며 '난민인정 심사 불회부'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 하나로 그는 공항 밖으로 단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사실상의 구금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가 머문 곳은 창문도 제대로 없는 삭막한 출국대기실이었다. 5개월, 날짜로는 150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그에게 주어진 것은 하루 세 끼의 햄버거가 전부였다. 무슬림인 그를 위한 할랄 음식은 단 한 번도 제공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오전 9시 이후에 일어나면 아침 식사마저 건너뛰어야 하는 비인간적인 처우를 견뎌내야 했다. 이는 최소한의 존엄성마저 짓밟는 행위이자, 난민 신청자의 기본적 권리를 명시한 국제 난민협약과 국내 난민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주 인권 단체들은 법무부 김해출입국이 사실상 사육에 가까운 비인간적 처우를 지속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는 인권 단체의 도움을 받아 법의 문을 두드렸다. 지난 7월, 난민심사 불회부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마침내 24일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부산지법은 A씨가 김해공항출입국·외국인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며, 법무부의 초기 결정이 부당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고통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법무부가 2주 안에 항소할 경우, 그의 기약 없는 공항 생활은 다시 이어질 수 있다. 만약 법무부가 항소를 포기한다면 그는 5개월 만에 공항 밖으로 나와 정식으로 난민 심사를 받을 기회를 얻게 된다.

 

이번 사건은 과거의 실패를 반복했다는 점에서 더욱 비판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인천공항에서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난민에게 햄버거만 제공한 사건에 대해 의식주 개선을 권고한 바 있으며, 법무부 스스로도 지난해 5월 출국대기실 환경 개선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약속이 무색하게 똑같은 인권 침해가 벌어진 셈이다. 이에 이주 인권 단체들은 25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며 법무부의 반인권적 행태를 규탄하고 재발 방지책 마련을 촉구할 예정이다.

 

여행핫클립

묘비 위에 지은 집, 아미동 비석마을의 눈물

역사가 이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통해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준비를 마쳤다. 피란수도 유산은 단순히 행정 기관의 건물을 넘어,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였던 피란민들의 애환과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박제된 현장이다. 등재 후보로 선정된 11곳의 유산 중에서도 역사의 무게와 현대적 감성이 공존하는 장소들이 여행자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역사 여행의 출발점은 과거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었던 '경무대'다. 현재 임시수도 기념관으로 운영 중인 이 붉은 벽돌 건물은 일제강점기 도지사 관사로 지어져 100년의 세월을 견뎌왔다. 1차와 2차에 걸친 부산 천도의 긴박했던 순간들이 이 건물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당시 국정을 돌보던 이승만 대통령의 집무실 풍경이 재현되어 있다. 전쟁의 결정적 장면들과 맞물린 피란수도의 내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이곳은 부산이 수도로서 감당해야 했던 역사적 책무를 증언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항구 근처의 판자촌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피란민들은 더 높은 산자락으로 밀려 올라가 터전을 잡았다. 그렇게 형성된 아미동 산 19번지는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세워진 비극적인 삶의 현장이다. 죽은 자의 묘지 구역에 맞춰 두세 평 남짓한 집을 짓고, 묘비석을 뜯어 축대를 쌓아 올린 비석마을의 풍경은 전쟁이 낳은 처절한 생존 방식을 보여준다. 묘지 위에 집을 지었다는 기괴한 소문과 일본 귀신에 대한 괴담이 돌기도 했지만, 이곳은 피란민들에게는 세상 어디보다 소중한 안식처였다.흥미롭게도 아미동은 최근 글로벌 아이돌 그룹 BTS의 팬클럽인 '아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 명소로 탈바꿈했다. 마을 이름인 아미동이 팬클럽 명칭과 우연히 일치하면서, 해외 팬들 사이에서 반드시 방문해야 할 성지로 입소문이 난 것이다. 마을 곳곳에 설치된 보라색 조형물들은 피란민의 움막을 뜻하던 '애막'에서 유래한 마을 이름의 본래 의미와 묘한 조화를 이루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역사적 비극의 현장이 현대 대중문화의 팬덤과 만나 새로운 생명력을 얻은 셈이다.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의 온기를 전달한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늘어선 비석 축대와 낡은 지붕들은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한국인의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유네스코 등재를 앞두고 진행되는 다양한 정비 사업들은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는 동시에, 방문객들이 피란 시절의 고단함과 희망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부산의 산복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이 유산들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역사 경관을 형성한다.부산이 수도였던 3년 가까운 시간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시기였다. 전쟁통에 떠맡은 수도의 역할이었지만, 부산은 그 기간 동안 국가의 기능을 유지하고 피란민들을 품어 안으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알려질 이 유산들은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피어난 인류애와 회복력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부산의 산동네 골목마다 스며있는 1,023일의 기억은 오늘날 우리에게 평화의 소중함과 역사의 무게를 다시금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