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스럽다" 이재명 한마디에…'내로남불' 비판 자초한 정당 현수막 규제

 이재명 대통령이 길거리에 무분별하게 내걸리는 정당 현수막에 대해 "저질스럽고 수치스럽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며 관련 법 개정을 전격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1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정당이라고 해서 지정된 곳이 아닌 아무 곳에나 현수막을 달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며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지적했다. 특히 그는 일부 군소 정당이 현수막 게시만을 목적으로 창당하는 이른바 '현수막 정당'의 난립 가능성을 언급하며 "악용이 심하면 법을 개정하든 없애든 해야 한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이는 최근 중국 비방이나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의혹을 제기하는 현수막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며 여권 내에서 대책 마련의 목소리가 커진 상황을 직접 정리하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정당 현수막 관련 규정은 2022년 민주당이 주도하여 개정한 것이다. 당시 서영교·김남국·김민철 등 민주당 의원들이 대표 발의한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정당 현수막은 별도의 허가나 신고 없이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게 됐다. 민주당은 이 법을 십분 활용해 윤석열 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으며, 특히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국면에서는 '대통령은 오므라이스, 국민은 방사능 밥상'과 같은 자극적인 문구의 현수막을 내걸며 여론전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대선 이후 상황이 역전되어 이 대통령을 비방하거나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현수막이 거리에 등장하자, 이제는 거꾸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셈이다.

 


이러한 여권의 입장 변화를 두고 야권에서는 결국 '내로남불'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최근 강경 대응의 진짜 배경에는 김현지 실장 관련 의혹을 담은 현수막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공당의 현수막에 혐오 표현이 담겨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유독 지금 시점에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 법 개정을 지시한 것은 측근을 겨냥한 의혹 제기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인종 혐오나 차별, 사실 왜곡·조작 정보 유통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범죄"라고 규정하며,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혐오 발언 처벌을 위한 형법 개정 시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 폐지를 함께 검토하라고 지시해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복합적인 논쟁에 불을 지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공연 및 스포츠 경기 암표 거래에 대해서도 강력한 근절 의지를 밝혔다. 그는 "다 좋은데 형사처벌 강화는 반대"라면서도, 실효성 있는 제재를 위해 "과징금을 판매 총액의 10배에서 30배까지 세게 부과하는 것을 검토하라"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는 솜방망이 처벌로는 암표 문제를 뿌리 뽑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경제적 이익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징벌적 과징금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구상이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당정은 관련 내용을 담은 이른바 '암표 3법'을 정기국회 내에 처리하기로 해 귀추가 주목된다.

 

여행핫클립

묘비 위에 지은 집, 아미동 비석마을의 눈물

역사가 이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통해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준비를 마쳤다. 피란수도 유산은 단순히 행정 기관의 건물을 넘어,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였던 피란민들의 애환과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박제된 현장이다. 등재 후보로 선정된 11곳의 유산 중에서도 역사의 무게와 현대적 감성이 공존하는 장소들이 여행자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역사 여행의 출발점은 과거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었던 '경무대'다. 현재 임시수도 기념관으로 운영 중인 이 붉은 벽돌 건물은 일제강점기 도지사 관사로 지어져 100년의 세월을 견뎌왔다. 1차와 2차에 걸친 부산 천도의 긴박했던 순간들이 이 건물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당시 국정을 돌보던 이승만 대통령의 집무실 풍경이 재현되어 있다. 전쟁의 결정적 장면들과 맞물린 피란수도의 내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이곳은 부산이 수도로서 감당해야 했던 역사적 책무를 증언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항구 근처의 판자촌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피란민들은 더 높은 산자락으로 밀려 올라가 터전을 잡았다. 그렇게 형성된 아미동 산 19번지는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세워진 비극적인 삶의 현장이다. 죽은 자의 묘지 구역에 맞춰 두세 평 남짓한 집을 짓고, 묘비석을 뜯어 축대를 쌓아 올린 비석마을의 풍경은 전쟁이 낳은 처절한 생존 방식을 보여준다. 묘지 위에 집을 지었다는 기괴한 소문과 일본 귀신에 대한 괴담이 돌기도 했지만, 이곳은 피란민들에게는 세상 어디보다 소중한 안식처였다.흥미롭게도 아미동은 최근 글로벌 아이돌 그룹 BTS의 팬클럽인 '아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 명소로 탈바꿈했다. 마을 이름인 아미동이 팬클럽 명칭과 우연히 일치하면서, 해외 팬들 사이에서 반드시 방문해야 할 성지로 입소문이 난 것이다. 마을 곳곳에 설치된 보라색 조형물들은 피란민의 움막을 뜻하던 '애막'에서 유래한 마을 이름의 본래 의미와 묘한 조화를 이루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역사적 비극의 현장이 현대 대중문화의 팬덤과 만나 새로운 생명력을 얻은 셈이다.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의 온기를 전달한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늘어선 비석 축대와 낡은 지붕들은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한국인의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유네스코 등재를 앞두고 진행되는 다양한 정비 사업들은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는 동시에, 방문객들이 피란 시절의 고단함과 희망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부산의 산복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이 유산들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역사 경관을 형성한다.부산이 수도였던 3년 가까운 시간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시기였다. 전쟁통에 떠맡은 수도의 역할이었지만, 부산은 그 기간 동안 국가의 기능을 유지하고 피란민들을 품어 안으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알려질 이 유산들은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피어난 인류애와 회복력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부산의 산동네 골목마다 스며있는 1,023일의 기억은 오늘날 우리에게 평화의 소중함과 역사의 무게를 다시금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