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천 별세, 한국 야구 유일한 4할 신화 잠들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4할 타자'의 신화를 쓴 백인천 전 감독이 향년 83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14일 오전, 평소 앓아온 뇌경색 증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끝내 숨을 거뒀다는 비보가 전해지자 야구계는 큰 슬픔에 잠겼다. 고인은 전날까지도 정기 검진을 받으며 삶에 대한 의지를 보였으나,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인해 불꽃 같았던 생애를 마감했다. 한국 야구의 기틀을 닦고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거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KBO는 최고의 예우를 갖춘 장례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

 

고인의 삶은 그 자체로 한국 근현대 야구사의 축소판이었다. 1942년 중국에서 태어나 전쟁의 포화를 뚫고 월남한 그는 경동고 시절부터 압도적인 신체 조건과 타격 재능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하체의 힘을 바탕으로 한 폭발적인 스윙은 국내 무대를 좁게 만들었고, 결국 1962년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해 한국인의 기개를 떨쳤다. 일본 퍼시픽리그 타격왕을 차지하며 동양 최고의 타자로 군림했던 그는, 1982년 고국에 프로야구가 출범한다는 소식에 주저 없이 귀국을 선택하며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1982년 MBC 청룡의 감독 겸 선수로 활약하며 남긴 0.412라는 타율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누구도 근접하지 못한 성역으로 남아 있다. 과학적인 훈련 시스템이 부족했던 시절, 철저한 자기 관리와 정신력으로 만들어낸 이 기록은 한국 야구의 자부심이자 넘어야 할 거대한 벽이었다. 그는 타석에서 단순히 공을 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혼을 담아 방망이를 휘둘렀다. 이러한 투쟁심은 훗날 지도자로서 '혼의 야구'라는 철학으로 이어지며 후배 선수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지도자로서의 백인천은 승부사 그 자체였다. 1990년 LG 트윈스의 초대 사령탑을 맡아 팀을 창단 첫해 우승으로 이끌며 지도력을 입증했다.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 등 여러 구단을 거치며 그는 때로 강한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몰아붙였고, 때로는 예리한 통찰력으로 타격 메커니즘을 전수했다. 그가 거친 팀마다 타자들의 기량이 급성장하며 '백인천 효과'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비록 그라운드 밖에서는 여러 풍파를 겪기도 했으나,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았다.

 


말년의 고인은 병마와 싸우면서도 야구계를 향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네 차례나 찾아온 뇌경색을 불굴의 의지로 이겨내며 재활에 매진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경제적인 고초와 가정사의 아픔 속에서도 그는 언제나 야구인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원년 6개 구단 초대 사령탑 중 이제 단 한 명만이 생존하게 된 현실은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지만, 그가 남긴 4할의 기록은 여전히 전광판 어딘가에서 빛나고 있는 듯하다.

 

이제 백인천이라는 이름은 기록지 속의 숫자를 넘어 한국 야구의 영원한 전설로 각인되었다. KBO장으로 치러지는 이번 장례식에는 수많은 야구 선후배와 팬들이 모여 고인의 마지막 타석을 기릴 예정이다. 비록 육신은 떠났지만, 그가 강조했던 승부를 향한 집념과 야구에 대한 순수한 사랑은 후배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다. 한국 야구의 가장 찬란했던 1982년을 상징하는 거성이 지면서, 한 시대의 막이 내려가고 있다.

 

여행핫클립

묘비 위에 지은 집, 아미동 비석마을의 눈물

역사가 이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통해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준비를 마쳤다. 피란수도 유산은 단순히 행정 기관의 건물을 넘어,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였던 피란민들의 애환과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박제된 현장이다. 등재 후보로 선정된 11곳의 유산 중에서도 역사의 무게와 현대적 감성이 공존하는 장소들이 여행자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역사 여행의 출발점은 과거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었던 '경무대'다. 현재 임시수도 기념관으로 운영 중인 이 붉은 벽돌 건물은 일제강점기 도지사 관사로 지어져 100년의 세월을 견뎌왔다. 1차와 2차에 걸친 부산 천도의 긴박했던 순간들이 이 건물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당시 국정을 돌보던 이승만 대통령의 집무실 풍경이 재현되어 있다. 전쟁의 결정적 장면들과 맞물린 피란수도의 내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이곳은 부산이 수도로서 감당해야 했던 역사적 책무를 증언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항구 근처의 판자촌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피란민들은 더 높은 산자락으로 밀려 올라가 터전을 잡았다. 그렇게 형성된 아미동 산 19번지는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세워진 비극적인 삶의 현장이다. 죽은 자의 묘지 구역에 맞춰 두세 평 남짓한 집을 짓고, 묘비석을 뜯어 축대를 쌓아 올린 비석마을의 풍경은 전쟁이 낳은 처절한 생존 방식을 보여준다. 묘지 위에 집을 지었다는 기괴한 소문과 일본 귀신에 대한 괴담이 돌기도 했지만, 이곳은 피란민들에게는 세상 어디보다 소중한 안식처였다.흥미롭게도 아미동은 최근 글로벌 아이돌 그룹 BTS의 팬클럽인 '아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 명소로 탈바꿈했다. 마을 이름인 아미동이 팬클럽 명칭과 우연히 일치하면서, 해외 팬들 사이에서 반드시 방문해야 할 성지로 입소문이 난 것이다. 마을 곳곳에 설치된 보라색 조형물들은 피란민의 움막을 뜻하던 '애막'에서 유래한 마을 이름의 본래 의미와 묘한 조화를 이루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역사적 비극의 현장이 현대 대중문화의 팬덤과 만나 새로운 생명력을 얻은 셈이다.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의 온기를 전달한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늘어선 비석 축대와 낡은 지붕들은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한국인의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유네스코 등재를 앞두고 진행되는 다양한 정비 사업들은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는 동시에, 방문객들이 피란 시절의 고단함과 희망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부산의 산복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이 유산들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역사 경관을 형성한다.부산이 수도였던 3년 가까운 시간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시기였다. 전쟁통에 떠맡은 수도의 역할이었지만, 부산은 그 기간 동안 국가의 기능을 유지하고 피란민들을 품어 안으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알려질 이 유산들은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피어난 인류애와 회복력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부산의 산동네 골목마다 스며있는 1,023일의 기억은 오늘날 우리에게 평화의 소중함과 역사의 무게를 다시금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