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에 복지를 '연계'한 일본 농장의 사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농촌이 쇠퇴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한 농장 대표가 이에 대한 방안을 강구했다. 

 

일본 시즈오카현의 쿄마루엔 농장의 13대 대표인 스즈키 아츠시는 누구나 와서 일할 수 있는 농장을 만들 생각을 하고 연령과 장애에 관계없이 누구나 일하는 농업 환경을 뜻하는 '유니버설 농업'을 농장에 적용했다. 

 

쿄마루엔 농장은 1997년을 시작으로 장애인 직원을 고용하여 전체 직원의 4분의 1이 장애인이다. 장애인을 고용한 후로 작은 농장은 점점 성장해 연 매출 6억엔(한화 약 53억 4000만원)을 달성했다.

 

스즈키 대표는 처음 장애인을 고용할 당시의 일화를 회상했다. 장애인의 어머니가 찾아와 자녀에게 일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급여도 받지 않겠다는 것에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는데, 우선적으로 실습의 개념으로 받아주게 되었다.

 

우려와 달리 농장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수작업의 비중이 큰 농업은 즐겁게 일하는 환경과 분위기일수록 능률이 커지는데, 장애인의 어려움을 돕기 위해 직원들이 합심하자 협동력이 향상되고 회사가 발전한 것이다. 그제야 대표는 장애인이 사회의 일원이 되길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했고, 장애인의 특성을 농업에 적용해 활용하는 방안을 더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스즈키 대표는 앞으로 장애인 외에도 90대 고령자를 고용할 예정이다. 고용으로 삶의 의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으로, 중증 장애인이나 고령자도 일할 수 있는 유니버설 농업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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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군 수천 명이 스러져간 비극의 다리, 그곳의 현재

여러 이름이 붙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이 다리가 품고 있는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곳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돌다리 중 축조 연대가 명확히 밝혀진 가장 오래된 다리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전설에 따르면 이 다리는 1273년 고려 원종 시절, 법천사의 고막대사가 도술을 부려 놓았다고 전해진다. 75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수많은 홍수와 자연재해를 견뎌냈으며, 최근의 기록적인 폭우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켜 그 견고함을 증명했다. 투박한 외형과 달리, 마치 두부를 자르듯 거대한 돌을 자유자재로 다듬어 서로 맞물리게 한 선조들의 건축 기술이 돋보인다.과거 이 다리는 함평과 나주를 잇는 유일한 통로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길이었다.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의 희망과, 괴나리봇짐을 멘 상인들의 땀방울이 이곳에 스며있다. 한때는 소금과 생선을 실은 배가 드나들던 큰 포구였고, 쌀을 가득 실은 우마차가 다닐 만큼 넓고 튼튼했지만 영산강 하굿둑 건설 이후 옛 모습은 상당 부분 사라졌다.고막천은 단지 만남과 희망의 공간만은 아니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당시, 나주성 공략에 실패하고 퇴각하던 농민군이 관군에 쫓겨 이곳까지 밀려왔다. 하필 밀물 때라 강을 건너지 못한 수많은 농민군이 힘없이 스러져간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당시의 참상을 말없이 지켜봤을 200년 수령의 팽나무가 지금도 천변에 서서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원래 20미터가 넘는 길이를 자랑했으나, 일제강점기 보수 과정에서 홍수로 3분의 2가량이 유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현재는 남아있는 옛 돌다리에 콘크리트 다리가 이어져 본래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없는 상태다. 다리를 놓았다는 고막대사의 이름에서 유래한 고막마을과, 고려 시대 관원들의 쉼터였던 고막원의 흔적이 다리 주변에 남아있다.오늘날 고막돌다리 주변은 주민과 방문객을 위한 휴식 공간으로 가꿔져 있다. 천변을 따라 단아한 산책로가 조성되었고, 한 주민이 기부한 땅 위에 지어진 ‘고막정’이라는 정자가 운치를 더한다. 또한, 2005년 함평 지역 폭설 피해 복구를 돕고 돌아가다 순직한 공무원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져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또 다른 의미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