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비어천가' 다음은 '충성가' 군무..尹 생일 축하쇼? 군인 동원 논란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첫 생일을 맞았던 2022년 12월, 대통령 경호처 창설 기념행사가 사실상 윤 대통령 생일파티처럼 치러졌다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특히 이 행사에 국군 장병들이 동원돼 윤 대통령 부부 앞에서 장기자랑을 하고,  '충성가'의 '조국'이라는 가사까지 '자유 대한'으로 바꿔 불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20일 SBS는 당시 행사 영상을 단독 공개하며 충격적인 장면들을 고스란히 보도했다. 영상 속에서 군 장병들은 '홀로 아리랑', 군가 '전선을 간다' 등의 노래는 물론 '충성가'까지 합창하며 군무까지 선보였다. 

 

특히 '충성가'의 경우,  '조국'이라는 가사를 '자유 대한'으로 바꿔 부른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적 논란까지 더해졌다. 공연이 끝난 후 장병들은 윤 대통령 부부에게 "대통령 내외분께 대하여 경례"라는 구호와 함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우렁차게 외치며 거수경례를 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동원된 장병들은 대통령 관저 외곽 경호를 담당하는 55경비단 소속으로, 이들 외에도 경찰 경호부대까지 동원된 것으로 전해졌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이 윤 대통령의 생일 축하 행사를 위해 최소 2개월 전부터 야간 시간을 쪼개 별도의 연습까지 강요받았다는 점이다. 

 

당시 기획관리실장이었던 김성훈 경호처 차장이 "합창할 땐 목소리를 화창하게 해달라"는 등 구체적인 지시까지 내렸다는 내부 폭로까지 나온 상황이다.

 

앞서 김 차장은 '경호처 직원들이 윤 대통령 생일 축하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는 일명 '윤비어천가' 의혹에 대해 "친구 생일에 축하 노래 안 부르나"라며 사적 영역의 일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장병 위문공연' 논란으로 윤 대통령과 김 차장이 공적 자원을 사적으로 이용하고, 군인들을 동원해 사실상 '윤석열 생일 축하 공연'을 강요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경호처는 "경호처와 경호부대 내부 활동은 기밀사항"이라며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군 장병들을 동원해 사실상 윤 대통령 생일 축하 공연을 시킨 것은 명백한 군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이며, 군 사기를 저하시킬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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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살던 궁궐이 일본인 아이들 놀이터로…충격적인 경희궁의 민낯

수행하며 역사의 중심에 섰던 서궐(西闕)의 위용은 간데없고, 현재는 이름에 터만 남았다는 의미의 ‘경희궁지(慶熙宮址)’로 불리며 도심 속 공원으로 인식될 뿐이다. 복원이 시작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정전인 숭정전 일대를 제외하면 드넓은 잔디밭이 옛 건물의 흔적을 대신하고 있어 궁궐의 고유한 정체성마저 희미해졌다.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명성에 가려져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힌 이 비운의 궁궐은, 그 황량한 터 곳곳에 식민과 분단의 아픔, 그리고 권력의 무상함이 새겨진 우리 근현대사의 축소판과도 같은 공간이다.경희궁이 겪은 수난의 역사는 궁궐의 정문이었던 흥화문의 기구한 여정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 본래 동쪽을 바라보며 위엄을 뽐내던 흥화문은 일제강점기,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찰 박문사의 정문으로 팔려나가는 치욕을 겪었다. 심지어 그 위치는 명성황후 시해에 항거하다 순국한 이들을 추모하던 장충단 바로 곁으로, 조선의 국왕이 드나들던 문을 민족의 원수를 기리는 공간의 입구로 삼아 왕실의 존엄을 철저히 짓밟은 것이다. 해방 후 박문사가 헐리고 그 자리에 신라호텔이 들어서면서 호텔 영빈관의 문으로 사용되다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경희궁 복원 사업과 함께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궁궐터의 상당 부분이 도시에 편입된 후라 원래의 자리를 되찾지 못하고 엉뚱한 도로변에 세워지며 뒤틀린 역사의 상흔을 고스란히 증언하고 있다.궁궐 내부의 훼손은 더욱 처참했다. 경희궁 터에는 식민지 시기 일본인 자녀를 위한 경성중학교가 들어섰고, 궁궐의 심장부인 숭정전은 교사로, 너른 궁궐터는 아이들의 운동장으로 전락하며 왕조의 상징적 공간은 완벽히 능욕당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현재 경희궁에 복원된 숭정전이 원본이 아닌 복제품이라는 점이다. 진짜 숭정전 건물은 일제강점기 일본 사찰에 팔렸다가 해방 후 동국대학교 교내에 그대로 남아 현재 ‘정각원’이라는 이름의 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왕의 어좌가 놓여있던 가장 존엄한 공간에 불상이 모셔진 모습은 경희궁이 겪어야 했던 역사의 비극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지붕 위 잡상들만이 이곳이 한때 궁궐의 정전이었음을 희미하게 알릴 뿐, 본래의 위엄을 잃어버린 채 이질적인 공간으로 남은 것이다.경희궁의 파괴가 오직 일제의 만행 탓만은 아니라는 점은 우리를 더욱 씁쓸하게 만든다. 왕실의 권위를 세운다는 명분으로 경복궁을 중건하던 흥선대원군은 경희궁의 수많은 전각을 헐어 그 자재를 사용했으며, 이는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괴는 어리석은 행위였다. 여기에 일제는 패망 직전 미군의 폭격에 대비한 거대한 방공호까지 건설하며 궁궐터를 군사 시설로 이용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오늘날에도 궁궐터에는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특별시교육청 건물이 버티고 서 있어 완전한 복원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잊힌 궁궐 경희궁은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을 잃고, 외세와 내부의 요인으로 철저히 파괴된 채 우리에게 진정한 역사 복원이란 무엇인지 무겁게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