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간 300회 지진...일본 '7월 대재앙' 카운트다운 시작됐나

 일본 가고시마현 도카라 열도에서 사흘 동안 300회에 가까운 지진이 연속 발생하면서 일본 내 대지진 공포와 루머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23일 MBC 남일본방송에 따르면 이날 오후 11시 36분경 도카라 열도의 악석섬에서 진도 4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는 지난 21일부터 이어진 연속 지진의 일부로, 24일 0시 기준 총 295회의 지진이 관측됐다. 이 중 진도 4는 4회, 진도 3은 18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해 가고시마현 도시마무라청은 비상사태에 대비한 야간 비상근무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악석섬 커뮤니티센터를 임시 대피소로 개방한 상태다. 주민들의 안전을 위한 조치가 신속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연이은 지진으로 인한 불안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이번 지진 다발은 일본 내에서 '오는 7월 대지진' 발생설이 퍼지고 있는 가운데 발생해 공포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이 루머의 근원 중 하나는 2021년 재출간된 일본 예언 만화 '내가 본 미래' 완전판에 등장하는 '2025년 7월 대재앙' 예언이다. 이 만화는 과거 동일본 대지진과 코로나19 팬데믹을 예측했다고 알려지면서 일본은 물론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불안 심리는 일본 여행을 계획 중인 관광객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일본 정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재해 시나리오 보고서가 이러한 우려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해당 보고서에서 일본 정부는 "앞으로 30년 내 약 80% 확률로 난카이 해곡에서 규모 8~9의 초대형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보고서가 예측한 피해 규모다. 초대형 지진 발생 시 최대 사망자는 29만 8천 명에 달하며, 이재민은 123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건물 235만 채가 붕괴하고 90만 명이 부상을 입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포함됐다.

 

이에 대응해 일본 정부는 내진 설계 보완, 방조제 자동화, 광역 대피 계획 수립 등을 포함한 134개 재난 대책을 마련하고 2030년까지 이를 완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일본으로 여행을 계획 중인 관광객들의 불안감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 상황이다.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의 대규모 지진이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은 지진의 영향이 일본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변국들의 관심과 대비책 마련의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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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