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왕즈이 완파…中 "돈으로 못 살 귀중한 패배"

 한국 배드민턴의 간판스타 안세영이 세계 무대에서 다시 한번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하며 라이벌 국가인 중국 매체의 극찬을 이끌어냈다. 지난 3일 열린 2026 세계여자배드민턴단체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한국 대표팀의 첫 주자로 나선 안세영은 중국의 에이스 왕즈이를 완벽하게 제압했다. 이 경기를 지켜본 중국 관영 방송사 CCTV는 자국 선수의 완패에도 불구하고 안세영의 경기력을 높이 평가하며, 이번 패배를 중국 배드민턴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귀중한 학습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이례적인 논평을 내놓았다.

 

이날 결승전 코트에 선 안세영은 현재 세계 랭킹 1위다운 빈틈없는 플레이를 펼쳤다. 세계 랭킹 2위로 안세영의 뒤를 바짝 쫓고 있는 왕즈이를 맞이하여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승부를 벌일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결과는 세트 스코어 2대 0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안세영은 첫 세트를 21대 10으로 가볍게 따낸 데 이어, 두 번째 세트 역시 21대 13으로 여유 있게 마무리하며 경기 내내 주도권을 놓치지 않고 상대를 몰아붙였다.

 


경기를 생중계한 중국 CCTV 중계진은 안세영의 몸놀림 하나하나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들은 안세영의 플레이가 현대 배드민턴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극찬했다. 또한 자국 선수인 왕즈이의 패배에 대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와 직접 코트에서 맞붙어 랠리를 이어간 것만으로도 엄청난 자산이 될 것이라며, 결과에 연연하기보다는 세계 최정상급 기량을 직접 체감하고 격차를 확인한 과정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승리로 두 선수의 상대 전적은 더욱 크게 벌어졌다. 안세영은 왕즈이를 상대로 통산 20승 5패라는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게 되었으며, 특히 최근 두 시즌 동안 치러진 13번의 맞대결에서는 무려 12승을 거두며 천적 관계를 확고히 다졌다. 중국 현지 언론들은 왕즈이의 기술적인 완성도나 승리를 향한 의지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지만, 체력 소모가 극심한 상황에서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 안세영의 벽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냉정하게 분석했다.

 


안세영의 이번 대회 활약은 개인 커리어에 있어서도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24세의 젊은 나이에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등 주요 5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휩쓰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데 이어, 단체전인 우버컵 우승 트로피까지 들어 올리며 명실상부한 역대 최고 선수 반열에 올랐다. 중국 매체들은 올해 안세영이 기록 중인 94.8%의 승률이 과거 배드민턴계의 전설로 불리던 린단이나 리총웨이의 전성기 시절 기록마저 뛰어넘는 경이로운 수치라고 조명했다.

 

자국 선수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외국 선수에게 중국 언론이 이토록 찬사를 보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CCTV 해설진은 방송을 마무리하며 왕즈이에게 이번 결승전 패배에 좌절하지 말고 이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을 것을 주문했다. 이들은 안세영이 배드민턴계에 세워놓은 높은 기준을 궁극적인 목표로 설정하고,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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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