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도 안 가는 호르무즈…한국에 "대신 가라" 억지

 미국 행정부가 중동 호르무즈 해협에서 진행 중인 선박 구출 작전인 이른바 '프로젝트 프리덤'에 한국군의 참여를 강도 높게 요구하는 가운데, 무리한 파병이 향후 심각한 외교적 후폭풍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전문가의 경고가 제기되었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6일 한 방송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최근 페르시아만 일대에서 발생한 국적 해운사 소속 화물선 나무호의 화재 사고와 미국의 군사적 압박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내놨다.

 

박 교수는 현재 미국의 파병 요구가 논리적으로 모순되어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해당 작전이 본격적인 군사 행동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작 미군 함정조차 진입을 꺼리는 위험 지역에 동맹국인 한국의 군함을 밀어 넣으려는 시도라고 꼬집었다. 미국의 진의는 작전 자체를 축소하면서도 해상 통제권은 유지하려는 것인데, 여기에 수반되는 막대한 군사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자국 군대를 철수시키고 그 공백을 한국 등 동맹국으로 채우려는 계산이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미국의 요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컸다. 동맹국의 요청이라는 이유로 섣불리 군대를 보낸다면, 미국 측이 이를 고마워하며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하기보다는 향후 다른 분쟁 지역에서도 한국의 군사력을 손쉽게 동원하려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국제 사회에서 한국이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맹목적으로 수행하는 처지로 전락할 위험이 있음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현재의 해협 봉쇄 상황을 무한정 끌고 가지는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과거 휴전 협상 당시 약속했던 봉쇄 해제 조치를 미국이 이행하지 않으면서 이란의 반발을 샀고, 이로 인해 사태가 더욱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오는 11월로 예정된 미국의 중간선거가 사태 해결의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선거 승리를 위해 국내 경제의 핵심 지표인 유가 안정이 절실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표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전쟁을 마무리 지으려는 동기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 정박해 있던 나무호에서 원인 미상의 폭발과 화재가 발생하자, 이를 이란의 소행으로 규정하며 한국의 작전 참여를 거듭 압박했다. 그는 다음 날 열린 공식 행사에서도 한국 선박이 미군의 보호를 받는 선단에서 이탈해 독자적으로 이동하다가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미군의 호위를 받은 다른 선박들은 무사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한국의 단독 행동이 사고의 원인이라는 식의 발언을 이어갔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미국 측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까지 나무호 화재의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으며, 해당 선박이 미군의 호위망을 벗어나 단독 운항을 시도했다는 객관적인 증거도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와대 측은 파병 논의에 앞서 사고의 진상 규명이 최우선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다만 국제 해상로의 안전 확보라는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국내 법적 절차와 군사적 대비 태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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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