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저스 김혜성 '미친 존재감', 부러진 배트 피하며 호수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김혜성이 폭발적인 주력과 정교한 타격감을 앞세워 텍사스 원정길을 자신의 독무대로 만들었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시리즈 최종전에 선발 출전한 김혜성은 시즌 첫 3루타를 포함해 멀티히트를 기록하며 팀의 대승에 힘을 보탰다. 이번 활약으로 김혜성은 잠시 주춤했던 타율을 다시 3할대 위로 끌어올리며 코칭스태프의 신뢰에 완벽히 부응했다. 하위 타선의 핵으로 부상한 그의 존재감은 다저스 타선의 파괴력을 한층 배가시키는 요소가 되고 있다.

 

경기의 흐름을 바꾼 첫 번째 장면은 팀이 대량 득점으로 기세를 올리던 5회초에 연출되었다. 김혜성은 상대 투수의 변화구를 가볍게 밀어 쳐 중전 안타를 만들어내며 출루에 성공했다. 비록 방망이 끝에 맞은 타구였으나, 공을 끝까지 보고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어내는 특유의 컨택 능력이 돋보인 순간이었다. 현지 중계진은 이 안타로 김혜성이 타율 3할 고지를 재탈환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정타가 아니더라도 결과를 만들어내는 그의 집요함을 높게 평가했다.

 


진가는 7회초 공격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선두 타자로 나선 김혜성은 좌중간을 완전히 가르는 날카로운 타구를 날린 뒤 망설임 없이 베이스를 돌았다. 외야 깊숙한 곳까지 공이 굴러가는 사이 그는 특유의 폭발적인 스피드로 3루까지 안착하며 '스탠드업 트리플'을 완성했다. 현지 해설진은 김혜성의 주력을 고려할 때 타구 방향이 조금만 더 깊었다면 그라운드 홈런까지 가능했을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는 그의 메이저리그 커리어 두 번째 3루타로 기록되었다.

 

수비에서도 김혜성의 집중력은 빛을 발했다. 5회말 수비 도중 타자의 배트가 부러져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발생했으나, 그는 당황하지 않고 끝까지 공을 추적했다. 부러진 배트 조각을 피하면서도 정확하게 공을 잡아 1루로 송구해 타자 주자를 아웃시키는 장면은 이날 경기의 숨은 명장면이었다. 현지 언론은 예기치 못한 혼란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아웃카운트를 잡아낸 김혜성의 수비 지능과 평정심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날 다저스는 김혜성을 비롯해 3홈런을 몰아친 앤디 파헤스와 멀티히트를 기록한 오타니 쇼헤이 등 타선의 고른 활약에 힘입어 휴스턴 마운드를 초토화했다. 선발 투수가 일찍 마운드를 내려가는 변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타선이 경기 초반부터 폭발하며 12-2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특히 김혜성이 이끄는 하위 타선이 상위 타선으로 찬스를 연결해 주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다저스는 이상적인 공격 전개를 보여주었다.

 

치열한 내야 주전 경쟁 속에서 얻어낸 이번 성과는 김혜성에게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최근 라인업 제외 등 입지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단 한 경기 만에 공·수·주 모두에서 완벽한 기량을 선보이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기 때문이다. 김혜성은 이번 경기를 통해 다저스 내야의 핵심 자원임을 확고히 했으며, 현지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여행핫클립

러시아 국경 옆 시르케네스, 방공호에 새겨진 320번의 공습

'후르티그루텐'은 1893년부터 해안가 34개 항구를 잇는 노르웨이의 생명선 역할을 해왔다. 산과 피오르가 육로를 차단한 지형적 특성상 바다는 노르웨이인들에게 풍경이기에 앞서 유일한 길이었다. 폭풍우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항해하는 이 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노르웨이 사람들의 국민적 기억을 공유하는 움직이는 박물관과 같다.시르케네스 도심 지하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참혹했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방공호 '앤더스그로타'가 숨겨져 있다. 독일군의 군사 거점이었던 이 도시는 4년 동안 무려 320차례의 공습을 견뎌내야 했으며, 시민들은 차갑고 축축한 바위 터널 속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시간을 보냈다. 전기도 화장실도 없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노인이 숨을 거두던 이 공간은 이제 역사의 증언자가 되어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지상의 평화로운 설경 아래 잠든 지하의 상흔은 이 도시가 짊어진 시간의 무게를 실감하게 한다.도시를 벗어나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네이든 지역에는 국경이 갈라놓은 또 다른 아픔이 남아 있다. '아브 박물관'은 노르웨이와 핀란드, 러시아 접경지에 거주해온 원주민 스콜트 사미족의 문화를 보존하는 최전선이다. 19세기 이후 강대국들의 국경 긋기로 인해 생활권이 세 나라로 찢긴 이들은 가족과 생이별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특히 최근의 국제 정세 악화로 러시아 쪽 동족들과의 교류가 완전히 단절되면서, 이들이 겪는 문화적 고립감과 언어 소멸의 위기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사라져가는 스콜트 사미어를 되살리려는 현지의 노력은 눈물겹다. 노르웨이 내에서 이 언어를 일상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인구는 이제 손에 꼽을 정도지만, 박물관의 도슨트들은 수업을 통해 새로운 구사자를 길러내며 언어의 맥을 잇고 있다. 언어는 단순히 소통의 도구를 넘어 한 민족의 정체성과 역사를 담는 그릇이기에, 이들의 수업은 사라진 뿌리를 찾는 고단한 여정과도 같다. 국경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 언어라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민족의 영혼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시르케네스의 여행이 비장미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묵직한 역사를 마주한 뒤 바렌츠해에서 갓 잡아 올린 킹크랩을 맛보는 경험은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가장 선명한 위로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식탁 위에서 여행자들은 방공호의 차가운 공기와 사미어 노래의 애잔함을 되새기며 북극권 항구도시의 매력을 온몸으로 만끽한다. 역사적 상흔과 풍요로운 바다의 혜택이 공존하는 이 독특한 환경은 시르케네스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감동의 원천이 된다.노르웨이의 북동쪽 끝에서 마주하는 시간은 풍경을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인 고통과 회복의 과정을 목격하는 일이 된다. 바닷길을 통해 이어져 온 사람들의 삶과 전쟁이 남긴 흉터, 그리고 소멸에 저항하는 원주민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시르케네스라는 도시의 서사를 완성한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북쪽 끝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보이지 않는 국경 너머로 이어지는 인간의 의지와 문화의 생명력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