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시아 월드컵 참가국 중 '아시아 최고순위'에 올라


한국은 NBC스포츠가 미국에서 정한 2022 카타르 월드컵 예선 국가 순위에서 중상위권에 올랐으나 16강을 향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미국 NBC스포츠는 6일 2022 카타르 월드컵 조추첨 이후 참가국 순위를 소개했다. 한국은 2일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추첨에서 포르투갈, 우루과이, 가나와 함께 H조에 편성됐다.

 

 

 

NBC스포츠는 카타르월드컵 참가국 32개국 중 브라질을 1위로 선정했다. 브라질도 지난달 31일 발표된 FIFA 랭킹 1위에서 벨기에를 제치고 4년 만에 FIFA 랭킹 1위를 되찾았다. 또한 벨기에, 잉글랜드, 프랑스, ​​독일, 아르헨티나는 NBC스포츠의 카타르 월드컵 예선에서 브라질에 이어 2~6위를 기록했다.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에서 1위를 차지한 H조의 포르투갈은 1위를 차지하지 못한 네덜란드(8위)와 덴마크(9위)보다 순위가 낮았다.

 

 

 

NBC스포츠가 선정순위에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이란은 24위, 일본은 25위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8위를 기록했다. 월드컵 예선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있는 아랍에미리트(UAE)나 호주는 결승에 진출하더라도 최하위 32위 안에 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은 B조 국가 중 최하위, 일본은 E조 중 3위를 기록해 2위도 16강 진출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다. 카타르 월드컵 E조에서 우승팀인 스페인, 독일과 함께 결승전에 진출해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여행핫클립

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