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연루설까지 제기했던 머스크, 결국 트럼프에 항복... '너무 지나쳤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극한 갈등 상황에서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머스크는 1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플랫폼 X에 "최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올린 몇몇 게시글을 후회한다. 너무 지나쳤다"라고 고백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J D 밴스 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게시글도 삭제했다.

 

머스크와 가까운 인물들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머스크의 분노가 가라앉기 시작했다"며 "대통령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화해 제스처의 일환으로 머스크는 트럼프 대통령이 군대를 투입해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반이민 시위를 진압하는 것에 대한 지지 의사도 표명했다. 그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비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루스소셜 게시물과 폭력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밴스 부통령의 게시물을 모두 공유하며 행정부와의 관계 개선 의지를 보였다.

 

한때 트럼프 2기 행정부와 밀착 관계를 유지했던 머스크는 최근 이민 규제, 감세, 보호무역 등 주요 정책에 반대하며 대통령과 불화를 빚었다. 특히 지난달 27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 법안을 "역겹다"고 강하게 비난했으며, 이달 5일에는 대통령 탄핵을 거론하는 수준까지 갈등이 고조됐다. 더 나아가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 등으로 수감됐다가 옥중에서 사망한 제프리 엡스타인의 성범죄 사건에 트럼프 대통령이 연루됐다는 주장까지 제기하며 양측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머스크의 마약 중독 가능성을 언급하며 테슬라, 스페이스X 등 머스크가 소유한 회사와 연방정부가 맺은 계약을 철회하겠다고 강경하게 맞섰다. 이러한 대통령의 발언은 머스크의 기업들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위협이었다.

 

머스크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 이유에 대해서는 최근 테슬라의 주가 하락이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CNBC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양측 분쟁이 극에 달했던 5일 하루에만 테슬라 주가가 14%나 폭락했다. 이로 인해 시가총액 1520억 달러(약 208조 원)가 증발하는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다.

 

결국 경제적 타격을 감당할 수 없었던 머스크가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먼저 손을 내민 것으로 보인다. 이번 화해 제스처가 양측의 갈등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을지, 그리고 테슬라 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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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