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자로 국내 상륙 4개월…처방 5배 폭증하며 1위

 글로벌 의약품 시장의 권력 지형이 항암제에서 비만 치료제로 완전히 재편되었다.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의 당뇨 및 비만 치료제인 마운자로가 오랜 기간 세계 매출 1위를 수성해온 머크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제치고 정상의 자리에 등극했다. 블룸버그통신이 집계한 올해 1분기 실적 자료에 따르면, 마운자로는 약 87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79억 달러에 그친 키트루다를 따돌렸다. 혁신적인 항암 치료제가 주도하던 시대가 저물고, 삶의 질과 직결된 비만 치료제가 시장의 핵심 동력으로 부상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마운자로의 독주는 동일 성분인 티르제파타이드를 기반으로 한 또 다른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의 동반 성장으로 더욱 견고해지는 추세다. 두 제품의 매출을 합산할 경우 기존 1위 제품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며, 이는 제약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예상보다 빠른 세대교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업계 분석가들은 치료 효과와 환자의 편의성 면에서 비만 치료제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어, 이러한 매출 역전 현상은 일시적인 사건이 아닌 장기적인 추세의 시작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도 마운자로의 파급력은 거세게 나타나고 있다. 후발 주자로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시 넉 달 만에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마운자로의 처방 건수는 출시 초기와 비교해 5배 이상 폭증하며 폭발적인 수요를 입증했다. 실제 의료 현장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체중 감량 효과에 대한 생생한 후기가 공유되며, 단순한 의약품을 넘어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번지는 모습이다.

 

마운자로가 이토록 단기간에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비결은 기존 약물을 압도하는 강력한 체중 감량 수치에 있다. 임상 시험 결과 고용량을 투여했을 때 평균 20% 이상의 체중 감소 효과가 나타나면서, 비만 환자들에게 수술 없이도 드라마틱한 변화를 경험하게 해준다는 인식이 확산했다. 이러한 임상적 결과는 환자들의 높은 만족도로 이어졌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품귀 현상 속에서도 마운자로를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제약사들의 고용량 경쟁도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더 강력한 감량 효과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노보노디스크는 기존보다 성분 함량을 대폭 높인 위고비 HD의 출시를 서두르고 있다. 한국릴리 역시 현재 국내에 유통되는 10㎎ 제품보다 용량이 큰 12.5㎎과 15㎎ 고용량 라인업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다. 이는 초기 감량 이후 정체기를 겪는 환자들을 공략하여 시장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비만 치료제는 이제 단순한 다이어트 보조 수단을 넘어 고혈압과 당뇨, 심혈관 질환 등 만성 질환을 예방하는 핵심 치료제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전 세계적인 비만 인구 증가와 함께 관련 치료 수요는 앞으로도 가파르게 상승할 것으로 보이며, 제약 시장의 핵심 축으로서 그 영향력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다만 약물의 오남용 우려와 장기 투약 시의 안전성 확보는 향후 시장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지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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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