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력 84.6% 향상... 근감소증 환자, 운동 없이 단백질만 섭취하면 '효과 없음'

 근육량이 부족하면 일상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동작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 앉았다 일어서는 간단한 행동도 힘들어지면서 삶의 질이 크게 저하되고, 심지어 사망 위험까지 증가한다. 국내 65세 이상 노인 중 약 13%가 근육 감소로 신체 기능이 점차 저하되는 근감소증을 앓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예방의학과 공중보건 저널에 발표된 바 있다.

 

현재 근감소증에 대한 명확한 치료법은 확립되어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권장되는 방법은 근육 구성의 주요 성분인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고 꾸준히 운동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방법 중 근육을 유지하고 개선하는 데 더 효과적인 것은 무엇일까?

 

중국 광저우 중의약대 제4임상의학학원의 쉬엘리안 두 교수 연구팀이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메타분석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2023년 3월까지 발표된 21편의 논문을 종합적으로 분석했으며, 총 1,215명의 근감소증을 앓는 고령 여성을 대상으로 세 가지 중재 방법의 효과를 비교했다. 연구에서 비교한 방법은 ▲운동만 하는 방법 ▲단백질만 보충하는 방법 ▲운동과 단백질 보충을 병행하는 방법이었다.

 

연구 결과, 근감소증 개선에는 '운동'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단백질 보충'은 보조적인 수단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물론 운동과 단백질 보충을 함께 병행했을 때 근력, 신체 기능, 근육량 모든 측면에서 가장 큰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운동만 단독으로 시행했을 때도 모든 건강 지표에서 상당한 개선이 이루어졌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손아귀 근력은 병행 요법에서 74%, 운동 단독 요법에서 72% 향상됐다. 무릎 근육 수축력의 경우 병행 요법은 78.8%, 운동 단독 요법은 오히려 더 높은 84.6%의 개선 효과를 보였다. 신체 기능을 나타내는 보행 속도는 병행 요법에서 94.5%, 운동 단독 요법에서 72.1% 증가했다. 근육량의 경우 병행 요법에서 92.4%, 운동 단독 요법에서 54.0% 증가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운동 없이 단백질만 보충했을 경우, 근력, 신체 기능, 근육량 모두에서 유의미한 개선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백질 섭취만으로는 근감소증 개선에 한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운동과 단백질 보충을 함께하는 복합 중재가 가장 효과적이지만, 운동만 하는 것도 실용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여성 환자를 대상으로 할 때는 단백질 영양소만 단독으로 보충하는 것은 근육 기능을 개선하고 근육량을 늘리는 효과가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Nutrients' 최근호에 게재되었으며, 고령화 사회에서 증가하는 근감소증 관리에 중요한 지침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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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