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이민석, 상동서 7실점 붕괴…1군 복귀 '멀어지나'

 롯데 자이언츠의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우완 에이스로 기대를 모았던 이민석이 2군 무대에서도 좀처럼 안정감을 찾지 못하며 깊은 수렁에 빠졌다. 이민석은 지난 6일 김해 상동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퓨처스리그 홈경기에 선발로 나섰으나, 4이닝 동안 8개의 피안타와 5개의 볼넷을 내주며 7실점으로 무너졌다. 최근 2군 등판에서 퀄리티 스타트급 호투를 선보이며 1군 복귀 가능성을 높였던 터라, 이번 등판에서 보여준 제구 난조와 대량 실점은 구단과 팬들에게 큰 아쉬움을 남겼다.

 

이날 경기에서 이민석은 초반부터 고질적인 제구 불안에 시발점을 뒀다. 1회에만 세 차례의 출루를 허용하며 불안하게 출발한 그는 3회 들어 본격적인 위기를 맞이했다. 연속 안타로 첫 실점을 내준 뒤 상대 타자 유민에게 투런 홈런까지 얻어맞으며 순식간에 경기 주도권을 내줬다. 4회를 무실점으로 넘기며 안정을 찾는 듯했으나 5회 다시 연속 볼넷으로 자초한 위기에서 적시타를 연달아 허용하며 결국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다. 뒤이어 등판한 불펜진이 승계 주자의 득점을 막지 못하면서 그의 실점은 7점까지 불어났다.

 


이번 부진으로 이민석의 올해 퓨처스리그 평균자책점은 7.71까지 치솟았다. 21이닝 동안 26개의 피안타를 허용하는 등 구위 자체가 타자들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으며, 12개의 볼넷을 내준 제구력 또한 심각한 과제로 남았다. 2022년 1차 지명으로 입단할 당시 최고 156km/h의 강속구를 뿌리며 롯데 마운드의 10년을 책임질 재목으로 평가받았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성적이다. 부상 회복 이후 지난해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하며 보여준 가능성이 올해 들어 급격히 퇴색되는 모양새다.

 

이민석의 올 시즌 행보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와 같다. 정규시즌 개막 직후 1군 4경기에서 평균자책점 21.21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남기고 2군으로 내려간 그는 상동에서도 기복 있는 투구를 반복하고 있다. 4월 중순 이후 두 경기 연속 호투를 펼치며 "드디어 본궤도에 올랐다"는 희망적인 관측이 나오기도 했으나, 불과 한 경기 만에 다시 무너지며 원점으로 돌아갔다. 구단 입장에서는 1군 선발진의 체력이 떨어지는 시점에 이민석의 복귀를 고대했으나, 현재의 투구 내용으로는 복귀 시점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워졌다.

 


전문가들은 이민석의 부진 원인을 기술적인 문제보다 심리적인 압박과 투구 밸런스의 붕괴에서 찾고 있다. 강속구라는 확실한 무기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볼카운트 싸움에서 밀리며 스스로 위기를 키우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후반기부터 시작된 부진이 올 시즌까지 이어지면서 자신감이 하락한 것도 큰 요인으로 분석된다. 1군 마운드에서 타자와 정면 승부를 펼치던 패기 있는 모습이 사라지고, 유인구 위주의 소극적인 투구가 화를 부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이민석의 1군 복귀는 다시 안갯속으로 빠지게 됐다. 롯데 코칭스태프는 이민석이 완벽한 밸런스를 찾을 때까지 2군에서 충분한 시간을 부여할 계획이지만, 팀 순위 싸움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유망주의 성장이 정체되는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한때 롯데 팬들의 가슴을 뛰게 했던 156km/h의 불꽃 투구가 언제쯤 다시 사직 마운드 위에서 재현될 수 있을지, 이민석의 고독한 자기 싸움은 당분간 상동에서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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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