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의 세포들3' 종영…김고은이 만든 완벽한 결말

 국내 드라마 역사상 최초로 실사와 3D 애니메이션의 결합을 시도하며 혁신적인 연출을 선보였던 '유미의 세포들' 시리즈가 시즌3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티빙 오리지널로 제작된 이번 시즌3는 지난 4일 최종회를 공개하며 유미의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2021년 첫선을 보인 이후 2022년 시즌2를 거쳐, 2026년 4년 만에 다시 찾아온 이번 시리즈는 평범한 직장인 유미의 일상과 사랑, 그리고 자아를 찾아가는 성장을 리얼하고 유쾌하게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시리즈의 성공을 견인한 일등 공신은 단연 주인공 유미 역을 맡은 배우 김고은이었다. 김고은은 누구나 겪을 법한 일상의 고민과 감정의 소용돌이를 섬세한 내면 연기로 풀어내며 시청자들이 유미의 삶에 깊이 몰입하게 만들었다. 사랑에 주저하면서도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가는 유미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선사했다.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빚어낸 그녀의 탄탄한 연기력은 유미의 세포마을처럼 시청자들이 유미를 무한 응원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고, 이는 결국 '용두용미'라는 호평 속에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결과로 이어졌다.

 


종영을 맞이한 김고은은 소회를 통해 시청자들의 변함없는 애정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그녀는 한 인물의 삶을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살아볼 수 있었던 경험이 배우로서 매우 특별하고 의미 깊은 작업이었다고 회상했다. 특히 '유미의 세포들'은 자신의 30대를 함께 열어준 작품이자 배우 인생의 새로운 장을 마련해준 소중한 필모그래피임을 강조했다. 유미를 진심으로 사랑해온 만큼, 그 캐릭터가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은 것에 대해 벅찬 기쁨을 드러내며 유미의 행복한 미래를 응원하는 작별 인사를 전했다.

 

이번 시즌3는 수치상으로도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스테디셀러의 저력을 입증했다. 공개 직후 3주 연속으로 주간 유료가입기여자수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으며, tvN을 통해 방송된 회차 역시 케이블과 종편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등 플랫폼을 가리지 않는 인기를 과시했다. 원작 웹툰의 방대한 서사를 시즌제로 나누어 제작하면서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은 연출력과 실사 모델링으로 진화한 세포들의 활약이 시너지를 내며 유료 가입자 유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작품 속 유미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거치며 단단해진 내면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나섰다. 최종회에서는 원작 팬들이 고대하던 순록과의 안정적인 관계가 그려지며 시청자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안겼다. 김고은은 유미가 어떤 시련을 마주하더라도 결국 이겨내고 성장할 사람이라는 확신을 전하며, 이제는 극 중 유미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진심 어린 마음을 덧붙였다. 이러한 배우의 진정성 있는 태도는 드라마 종영 이후에도 온라인상에서 끊임없는 화제를 낳으며 여운을 길게 남기고 있다.

 

'유미의 세포들' 시리즈는 한국형 시즌제 드라마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웹툰의 상상력을 완벽하게 구현한 기술력과 배우들의 명연기, 그리고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대본의 힘이 삼박자를 이루며 티빙의 대표 오리지널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유미의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만, 그녀가 남긴 공감의 메시지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마음속 세포마을에 남아 따뜻한 위로로 작동하고 있다. 현재 티빙에서는 전 시즌의 전편을 감상할 수 있으며, 종영 아쉬움을 달래려는 시청자들의 다시 보기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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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벌에 핀 고려의 꿈…개태사 왕건 동상의 비밀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으로, 백제 말기 계백 장군이 이끄는 결사대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황산벌 전투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지는 형상 때문에 연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 일대는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하는 중요한 공간이다.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창건한 국가적인 사찰이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이곳 황산벌에서 최종적으로 제압하며 기나긴 전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부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었다고 여겨 산의 이름을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으로 바꾸고, 태평성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4년의 대공사 끝에 개태사를 완공했다. 이후 이 사찰은 약 450년간 고려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번영을 누렸다.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어진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 안치된 왕건의 청동상은 의자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내리고 있는 독특한 의좌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불교 미술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언제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미륵보살의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양식이다. 개태사 어진전의 왕건 동상이 이 같은 자세를 취한 것은 그가 전란을 끝내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구원자이자 태평성대를 이끄는 군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된다.개태사 곳곳에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단정하고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주는 오층 석탑과 더불어, 사찰 창건 당시 승려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름 3미터 크기의 거대한 무쇠 솥인 철확이 눈길을 끈다. 특히 철확은 사찰이 폐허가 된 후 홍수에 떠내려가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박람회에 전시되는 등 숱한 수난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유물로, 개태사의 굴곡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극락대보전에 모셔진 장중한 규모의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고려 초기 새 왕조의 강인한 기상과 호국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고려 왕실의 상징이었던 개태사는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억불숭유 정책의 여파로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폐사지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오랜 세월 텅 빈 벌판으로 방치되었던 절터는 1934년에 이르러서야 옛터의 중심부에 사찰을 다시 세우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개태사의 규모는 과거 화려했던 고려 시대의 도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지만, 사찰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마을 땅속에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려 시대 개태사의 거대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오랜 세월을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개태사의 역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진 빛바랜 안내판은 1960년대 초 개태사지에서 발굴되었으나 외부로 유출된 국보 금동대탑의 반환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한 사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유물에 대해 사찰 측은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1년 법원은 소유권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개태사의 옛터에서 출토된 핵심 유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지역 사회의 역사적 자긍심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