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절묘한 '관세 협상 카드'... 트럼프 슬로건 차용한 '마스가' 공개

 한미 양국이 8월 1일 시한을 앞두고 관세 협상 막바지에 돌입한 가운데, 한국 정부가 미국에 파격적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를 제안해 주목받고 있다. 이른바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로 명명된 이 제안은 수십조 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담고 있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5일(현지시간) 뉴욕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의 회담에서 이 프로젝트를 상세히 설명했다. 이 회담은 러트닉 장관의 자택에서 이루어졌으며, 김 장관은 미리 준비한 패널을 활용해 프로젝트의 내용을 전달했다.

 

'마스가'라는 이름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유명한 정치 슬로건인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에 조선업을 의미하는 'Shipbuilding'을 결합해 만들어졌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 민간 조선사들의 미국 현지 대규모 투자와 함께 이를 뒷받침할 대출 및 보증 등 포괄적인 금융 지원 패키지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 정부는 미국 측에 수백억 달러, 한화로 수십조 원에 달하는 구체적인 금액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향후 협상 과정에서 이 금액이 조정될 가능성도 열어두고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 지원에는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공적 금융 기관들의 참여가 검토되고 있다.

 


한미 관세 협상의 핵심 인물로 여겨지는 러트닉 장관은 한국 측의 제안에 상당히 만족스러워하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도 26일 보도자료를 통해 "미국 측의 조선 분야에 대한 높은 관심을 확인하고, 양국 간 조선 협력을 포함한 상호 합의 가능한 방안을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제안은 한국의 세계적인 조선 산업 경쟁력을 활용한 전략적 접근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미국의 전략적 경쟁 상대인 중국과 세계 1위를 다투는 한국 조선 산업은 자국 내 조선 산업 재건을 간절히 원하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한국만의 독특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프로젝트가 성사될 경우, 한국은 미국과의 관세 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조선 기업들의 미국 시장 진출 기회를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미국은 쇠퇴한 자국 조선 산업을 부활시키는 동시에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전략적 이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8월 1일 시한이 다가오면서 양국의 협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며, '마스가 프로젝트'가 협상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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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살던 궁궐이 일본인 아이들 놀이터로…충격적인 경희궁의 민낯

수행하며 역사의 중심에 섰던 서궐(西闕)의 위용은 간데없고, 현재는 이름에 터만 남았다는 의미의 ‘경희궁지(慶熙宮址)’로 불리며 도심 속 공원으로 인식될 뿐이다. 복원이 시작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정전인 숭정전 일대를 제외하면 드넓은 잔디밭이 옛 건물의 흔적을 대신하고 있어 궁궐의 고유한 정체성마저 희미해졌다.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명성에 가려져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힌 이 비운의 궁궐은, 그 황량한 터 곳곳에 식민과 분단의 아픔, 그리고 권력의 무상함이 새겨진 우리 근현대사의 축소판과도 같은 공간이다.경희궁이 겪은 수난의 역사는 궁궐의 정문이었던 흥화문의 기구한 여정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 본래 동쪽을 바라보며 위엄을 뽐내던 흥화문은 일제강점기,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찰 박문사의 정문으로 팔려나가는 치욕을 겪었다. 심지어 그 위치는 명성황후 시해에 항거하다 순국한 이들을 추모하던 장충단 바로 곁으로, 조선의 국왕이 드나들던 문을 민족의 원수를 기리는 공간의 입구로 삼아 왕실의 존엄을 철저히 짓밟은 것이다. 해방 후 박문사가 헐리고 그 자리에 신라호텔이 들어서면서 호텔 영빈관의 문으로 사용되다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경희궁 복원 사업과 함께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궁궐터의 상당 부분이 도시에 편입된 후라 원래의 자리를 되찾지 못하고 엉뚱한 도로변에 세워지며 뒤틀린 역사의 상흔을 고스란히 증언하고 있다.궁궐 내부의 훼손은 더욱 처참했다. 경희궁 터에는 식민지 시기 일본인 자녀를 위한 경성중학교가 들어섰고, 궁궐의 심장부인 숭정전은 교사로, 너른 궁궐터는 아이들의 운동장으로 전락하며 왕조의 상징적 공간은 완벽히 능욕당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현재 경희궁에 복원된 숭정전이 원본이 아닌 복제품이라는 점이다. 진짜 숭정전 건물은 일제강점기 일본 사찰에 팔렸다가 해방 후 동국대학교 교내에 그대로 남아 현재 ‘정각원’이라는 이름의 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왕의 어좌가 놓여있던 가장 존엄한 공간에 불상이 모셔진 모습은 경희궁이 겪어야 했던 역사의 비극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지붕 위 잡상들만이 이곳이 한때 궁궐의 정전이었음을 희미하게 알릴 뿐, 본래의 위엄을 잃어버린 채 이질적인 공간으로 남은 것이다.경희궁의 파괴가 오직 일제의 만행 탓만은 아니라는 점은 우리를 더욱 씁쓸하게 만든다. 왕실의 권위를 세운다는 명분으로 경복궁을 중건하던 흥선대원군은 경희궁의 수많은 전각을 헐어 그 자재를 사용했으며, 이는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괴는 어리석은 행위였다. 여기에 일제는 패망 직전 미군의 폭격에 대비한 거대한 방공호까지 건설하며 궁궐터를 군사 시설로 이용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오늘날에도 궁궐터에는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특별시교육청 건물이 버티고 서 있어 완전한 복원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잊힌 궁궐 경희궁은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을 잃고, 외세와 내부의 요인으로 철저히 파괴된 채 우리에게 진정한 역사 복원이란 무엇인지 무겁게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