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경 70%는 여자 차지?"…경찰 시험 개편에 수험가 '발칵', 경찰청 진땀 해명

 내년부터 경찰 순경 공채가 남녀 통합 선발 방식으로 전면 개편되는 가운데, '여성 합격자가 60~70%에 달할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경찰청이 "실제 운영 결과와 다르다"며 공식 입장을 내고 진화에 나섰다.

 

논란의 핵심은 2026년부터 도입되는 '남녀 통합 선발'과 '순환식 체력검사'다. 기존에는 남녀 정원을 분리해 선발했지만, 앞으로는 성별 구분 없이 단일 기준으로 필기시험과 체력검사를 치러 최종 합격자를 가린다.

 

특히 체력검사 방식의 변화가 크다. 기존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등 종목별 점수제에서 '순환식' 합격/불합격(P/F) 방식으로 바뀐다. 남녀 모두 4.2kg 조끼를 입고 장애물 달리기, 장대 허들 넘기, 밀고 당기기 등 5개 코스를 4분 40초 안에 통과하면 '합격'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일부 학원가에서는 여성 수험생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조라는 분석을 내놨다. 통상 필기시험 성적이 여성이 높은 경향을 보이고, 남성이 강점을 보이던 체력검사는 기준 통과만 하면 되는 방식으로 바뀌어 변별력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한 유명 강사는 유튜브를 통해 "사실상 여성에게 메리트를 주는 것"이라며 "내년 순경 공채 합격자의 60~70%는 여성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에 경찰청은 3일 보도 설명자료를 통해 정면으로 반박했다. 경찰청은 2023년부터 경위 공채 등 일부 채용에서 순환식 체력검사를 시범 운영한 결과, 남성의 통과율은 90%대 후반, 여성은 70% 전후로 남성이 더 높았다고 밝혔다.

 

또한, 해당 제도를 먼저 도입한 2023년 경위 공채 합격자 비율은 남성 72%(36명), 여성 28%(14명)였으며, 2024년에는 남성 80%(40명), 여성 20%(10명)로 오히려 남성 합격자 비율이 더 높았다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학원가의 예측이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경찰청은 "순환식 체력검사는 미국 뉴욕 경찰 등 선진국에서도 도입한 방식으로, 현장 직무수행에 더 적합하다"고 강조하며, 제도 변화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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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살던 궁궐이 일본인 아이들 놀이터로…충격적인 경희궁의 민낯

수행하며 역사의 중심에 섰던 서궐(西闕)의 위용은 간데없고, 현재는 이름에 터만 남았다는 의미의 ‘경희궁지(慶熙宮址)’로 불리며 도심 속 공원으로 인식될 뿐이다. 복원이 시작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정전인 숭정전 일대를 제외하면 드넓은 잔디밭이 옛 건물의 흔적을 대신하고 있어 궁궐의 고유한 정체성마저 희미해졌다.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명성에 가려져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힌 이 비운의 궁궐은, 그 황량한 터 곳곳에 식민과 분단의 아픔, 그리고 권력의 무상함이 새겨진 우리 근현대사의 축소판과도 같은 공간이다.경희궁이 겪은 수난의 역사는 궁궐의 정문이었던 흥화문의 기구한 여정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 본래 동쪽을 바라보며 위엄을 뽐내던 흥화문은 일제강점기,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찰 박문사의 정문으로 팔려나가는 치욕을 겪었다. 심지어 그 위치는 명성황후 시해에 항거하다 순국한 이들을 추모하던 장충단 바로 곁으로, 조선의 국왕이 드나들던 문을 민족의 원수를 기리는 공간의 입구로 삼아 왕실의 존엄을 철저히 짓밟은 것이다. 해방 후 박문사가 헐리고 그 자리에 신라호텔이 들어서면서 호텔 영빈관의 문으로 사용되다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경희궁 복원 사업과 함께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궁궐터의 상당 부분이 도시에 편입된 후라 원래의 자리를 되찾지 못하고 엉뚱한 도로변에 세워지며 뒤틀린 역사의 상흔을 고스란히 증언하고 있다.궁궐 내부의 훼손은 더욱 처참했다. 경희궁 터에는 식민지 시기 일본인 자녀를 위한 경성중학교가 들어섰고, 궁궐의 심장부인 숭정전은 교사로, 너른 궁궐터는 아이들의 운동장으로 전락하며 왕조의 상징적 공간은 완벽히 능욕당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현재 경희궁에 복원된 숭정전이 원본이 아닌 복제품이라는 점이다. 진짜 숭정전 건물은 일제강점기 일본 사찰에 팔렸다가 해방 후 동국대학교 교내에 그대로 남아 현재 ‘정각원’이라는 이름의 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왕의 어좌가 놓여있던 가장 존엄한 공간에 불상이 모셔진 모습은 경희궁이 겪어야 했던 역사의 비극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지붕 위 잡상들만이 이곳이 한때 궁궐의 정전이었음을 희미하게 알릴 뿐, 본래의 위엄을 잃어버린 채 이질적인 공간으로 남은 것이다.경희궁의 파괴가 오직 일제의 만행 탓만은 아니라는 점은 우리를 더욱 씁쓸하게 만든다. 왕실의 권위를 세운다는 명분으로 경복궁을 중건하던 흥선대원군은 경희궁의 수많은 전각을 헐어 그 자재를 사용했으며, 이는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괴는 어리석은 행위였다. 여기에 일제는 패망 직전 미군의 폭격에 대비한 거대한 방공호까지 건설하며 궁궐터를 군사 시설로 이용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오늘날에도 궁궐터에는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특별시교육청 건물이 버티고 서 있어 완전한 복원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잊힌 궁궐 경희궁은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을 잃고, 외세와 내부의 요인으로 철저히 파괴된 채 우리에게 진정한 역사 복원이란 무엇인지 무겁게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