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쇼핑하다 '친트럼프' 시위대 만난 백악관 대변인…그의 표정이 '화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빈 방한을 수행 중인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경주에서 K뷰티 쇼핑에 나선 모습과 함께, 자신들을 환영하는 극우 시위대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상반된 모습이 동시에 포착되어 화제의 중심에 섰다. 2025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경주를 찾은 그는 한편으로는 한국의 대중문화 소비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지지 세력과 교감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레빗 대변인은 먼저 자신의 SNS를 통해 한국에서의 쇼핑 경험을 공유하며 친근한 이미지를 드러냈다. 그는 "한국에서 발견한 스킨케어 제품"이라는 짧은 글과 함께 올리브영에서 구매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장품들의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에는 국내외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마스크팩, 스팟 패치, 선크림, 세럼 등 다양한 제품이 담겨 있었다. 이는 K뷰티의 세계적 위상과 함께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 코스로 자리 잡은 올리브영의 인기를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올리브영의 외국인 매출은 전년 대비 140%나 급증했으며, 일부 매장은 매출의 70%를 외국인 관광객이 차지할 정도로 K뷰티 쇼핑의 중심지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화장품 쇼핑과 함께 주목받은 것은 경주 황리단길에서 포착된 그의 또 다른 모습이다. 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된 영상 속에서 레빗 대변인은 올리브영 매장 앞에서 성조기와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는 시위대를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북을 치며 "이재명 방 빼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한국인들은 트럼프를 사랑한다"는 현수막을 든 시위대를 향해, 그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듯한 모습이 영상에 담기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 역할을 하는 핵심 참모가 한국의 특정 정치 성향을 띤 시위 현장을 마주하고 보인 반응이라는 점에서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1997년생으로, 트럼프 재선 성공 후 27세의 나이에 백악관 대변인으로 전격 발탁되며 '파격 인사'의 주인공이 된 레빗 대변인은 대학생 시절부터 정치 활동에 몸담아 온 인물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백악관 인턴으로 시작해 연설 원고 작성자, 대변인 보좌관 등 핵심 보직을 두루 거쳤으며, 2022년에는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직접 출마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발탁하며 "나의 메시지를 미국 국민에게 전달하는 데 뛰어난 활약을 펼칠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번 방한 기간 중 그가 보여준 K뷰티 쇼핑과 시위대 조우라는 이질적인 두 장면은, 그의 개인적 취향과 정치적 역할을 동시에 드러내며 복합적인 인물상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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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살던 궁궐이 일본인 아이들 놀이터로…충격적인 경희궁의 민낯

수행하며 역사의 중심에 섰던 서궐(西闕)의 위용은 간데없고, 현재는 이름에 터만 남았다는 의미의 ‘경희궁지(慶熙宮址)’로 불리며 도심 속 공원으로 인식될 뿐이다. 복원이 시작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정전인 숭정전 일대를 제외하면 드넓은 잔디밭이 옛 건물의 흔적을 대신하고 있어 궁궐의 고유한 정체성마저 희미해졌다.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명성에 가려져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힌 이 비운의 궁궐은, 그 황량한 터 곳곳에 식민과 분단의 아픔, 그리고 권력의 무상함이 새겨진 우리 근현대사의 축소판과도 같은 공간이다.경희궁이 겪은 수난의 역사는 궁궐의 정문이었던 흥화문의 기구한 여정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 본래 동쪽을 바라보며 위엄을 뽐내던 흥화문은 일제강점기,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찰 박문사의 정문으로 팔려나가는 치욕을 겪었다. 심지어 그 위치는 명성황후 시해에 항거하다 순국한 이들을 추모하던 장충단 바로 곁으로, 조선의 국왕이 드나들던 문을 민족의 원수를 기리는 공간의 입구로 삼아 왕실의 존엄을 철저히 짓밟은 것이다. 해방 후 박문사가 헐리고 그 자리에 신라호텔이 들어서면서 호텔 영빈관의 문으로 사용되다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경희궁 복원 사업과 함께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궁궐터의 상당 부분이 도시에 편입된 후라 원래의 자리를 되찾지 못하고 엉뚱한 도로변에 세워지며 뒤틀린 역사의 상흔을 고스란히 증언하고 있다.궁궐 내부의 훼손은 더욱 처참했다. 경희궁 터에는 식민지 시기 일본인 자녀를 위한 경성중학교가 들어섰고, 궁궐의 심장부인 숭정전은 교사로, 너른 궁궐터는 아이들의 운동장으로 전락하며 왕조의 상징적 공간은 완벽히 능욕당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현재 경희궁에 복원된 숭정전이 원본이 아닌 복제품이라는 점이다. 진짜 숭정전 건물은 일제강점기 일본 사찰에 팔렸다가 해방 후 동국대학교 교내에 그대로 남아 현재 ‘정각원’이라는 이름의 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왕의 어좌가 놓여있던 가장 존엄한 공간에 불상이 모셔진 모습은 경희궁이 겪어야 했던 역사의 비극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지붕 위 잡상들만이 이곳이 한때 궁궐의 정전이었음을 희미하게 알릴 뿐, 본래의 위엄을 잃어버린 채 이질적인 공간으로 남은 것이다.경희궁의 파괴가 오직 일제의 만행 탓만은 아니라는 점은 우리를 더욱 씁쓸하게 만든다. 왕실의 권위를 세운다는 명분으로 경복궁을 중건하던 흥선대원군은 경희궁의 수많은 전각을 헐어 그 자재를 사용했으며, 이는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괴는 어리석은 행위였다. 여기에 일제는 패망 직전 미군의 폭격에 대비한 거대한 방공호까지 건설하며 궁궐터를 군사 시설로 이용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오늘날에도 궁궐터에는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특별시교육청 건물이 버티고 서 있어 완전한 복원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잊힌 궁궐 경희궁은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을 잃고, 외세와 내부의 요인으로 철저히 파괴된 채 우리에게 진정한 역사 복원이란 무엇인지 무겁게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