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고 살쪘을 뿐인데… 온몸 망가뜨리는 ‘이 병’의 정체

 ‘요즘 들어 부쩍 피곤하고 살이 찐다’고 느끼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스트레스나 노화 현상으로 치부하기 쉽다. 하지만 이처럼 일상에서 흔히 나타나는 무기력감과 체중 증가는 우리 몸의 에너지 공장인 갑상선이 보내는 위험 신호일 수 있다.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내분비내과 박소영 교수는 이러한 증상들이 ‘갑상선 기능 저하증’의 대표적인 전조 증상일 수 있다고 경고하며, 특히 여성에게서 발병률이 높고 병의 진행 속도가 매우 느려 세심한 관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몸의 변화에 둔감해지는 순간, 병은 소리 없이 우리 몸을 잠식해 들어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은 목에 위치한 나비 모양의 내분비기관인 갑상선에서 호르몬이 충분히 분비되지 않아 발생하는 질환이다. 갑상선 호르몬은 우리 몸의 신진대사 속도를 조절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므로, 이 호르몬이 부족해지면 온몸의 대사 기능이 급격히 저하된다. 마치 자동차의 엔진 출력이 떨어진 것처럼, 극심한 피로감과 무기력감이 찾아오고 에너지 소모가 줄어들어 평소와 똑같이 먹어도 체중이 쉽게 불어난다. 이뿐만 아니라 장운동이 느려져 변비가 생기고, 피부는 건조하고 푸석해지며,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우울감이 찾아오기도 한다. 특히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추위를 심하게 타는 것 역시 대표적인 증상이다. 이러한 증상들을 단순한 컨디션 난조로 여기고 방치할 경우, 고지혈증이나 동맥경화와 같은 심각한 전신 질환으로 악화될 수 있어 조기 진단과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일으키는 가장 흔한 원인은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스스로 갑상선을 공격하는 자가면역 질환의 일종인 ‘하시모토 갑상선염’이다. 이 외에도 과거에 갑상선 관련 수술을 받았거나 방사선 치료를 받은 경우, 특정 약물 복용의 부작용, 그리고 갑상선 호르몬 분비를 총괄하는 뇌하수체에 문제가 생긴 경우에도 발생할 수 있다. 진단은 의외로 간단하다. 팔에서 소량의 피를 뽑는 혈액검사를 통해 혈중 갑상선자극호르몬(TSH)과 갑상선호르몬(T4) 수치를 확인하는 것만으로 대부분 진단이 가능하다. 필요한 경우에는 갑상선 초음파 검사를 병행하여 갑상선의 모양이나 크기에 구조적인 이상은 없는지 추가로 확인하기도 한다.

 

일단 진단이 내려지면 치료는 부족한 갑상선 호르몬을 인공적으로 합성한 약물(레보티록신)로 보충해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치료 초기에는 6주에서 8주 간격으로 혈액검사를 반복하며 환자에게 맞는 최적의 약물 용량을 찾아가고, 호르몬 수치가 안정권에 접어들면 6개월에서 1년 간격으로 추적 관찰하며 상태를 유지한다. 대부분의 환자는 꾸준한 약물 치료만으로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완벽하게 영위할 수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증상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해서 임의로 약 복용을 중단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며, 반드시 정기적인 진료를 통해 주치의와 상담하며 치료를 이어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와 더불어 균형 잡힌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과 같은 기본적인 건강 관리가 증상 개선과 활력 있는 삶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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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살던 궁궐이 일본인 아이들 놀이터로…충격적인 경희궁의 민낯

수행하며 역사의 중심에 섰던 서궐(西闕)의 위용은 간데없고, 현재는 이름에 터만 남았다는 의미의 ‘경희궁지(慶熙宮址)’로 불리며 도심 속 공원으로 인식될 뿐이다. 복원이 시작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정전인 숭정전 일대를 제외하면 드넓은 잔디밭이 옛 건물의 흔적을 대신하고 있어 궁궐의 고유한 정체성마저 희미해졌다.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명성에 가려져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힌 이 비운의 궁궐은, 그 황량한 터 곳곳에 식민과 분단의 아픔, 그리고 권력의 무상함이 새겨진 우리 근현대사의 축소판과도 같은 공간이다.경희궁이 겪은 수난의 역사는 궁궐의 정문이었던 흥화문의 기구한 여정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 본래 동쪽을 바라보며 위엄을 뽐내던 흥화문은 일제강점기,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찰 박문사의 정문으로 팔려나가는 치욕을 겪었다. 심지어 그 위치는 명성황후 시해에 항거하다 순국한 이들을 추모하던 장충단 바로 곁으로, 조선의 국왕이 드나들던 문을 민족의 원수를 기리는 공간의 입구로 삼아 왕실의 존엄을 철저히 짓밟은 것이다. 해방 후 박문사가 헐리고 그 자리에 신라호텔이 들어서면서 호텔 영빈관의 문으로 사용되다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경희궁 복원 사업과 함께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궁궐터의 상당 부분이 도시에 편입된 후라 원래의 자리를 되찾지 못하고 엉뚱한 도로변에 세워지며 뒤틀린 역사의 상흔을 고스란히 증언하고 있다.궁궐 내부의 훼손은 더욱 처참했다. 경희궁 터에는 식민지 시기 일본인 자녀를 위한 경성중학교가 들어섰고, 궁궐의 심장부인 숭정전은 교사로, 너른 궁궐터는 아이들의 운동장으로 전락하며 왕조의 상징적 공간은 완벽히 능욕당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현재 경희궁에 복원된 숭정전이 원본이 아닌 복제품이라는 점이다. 진짜 숭정전 건물은 일제강점기 일본 사찰에 팔렸다가 해방 후 동국대학교 교내에 그대로 남아 현재 ‘정각원’이라는 이름의 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왕의 어좌가 놓여있던 가장 존엄한 공간에 불상이 모셔진 모습은 경희궁이 겪어야 했던 역사의 비극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지붕 위 잡상들만이 이곳이 한때 궁궐의 정전이었음을 희미하게 알릴 뿐, 본래의 위엄을 잃어버린 채 이질적인 공간으로 남은 것이다.경희궁의 파괴가 오직 일제의 만행 탓만은 아니라는 점은 우리를 더욱 씁쓸하게 만든다. 왕실의 권위를 세운다는 명분으로 경복궁을 중건하던 흥선대원군은 경희궁의 수많은 전각을 헐어 그 자재를 사용했으며, 이는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괴는 어리석은 행위였다. 여기에 일제는 패망 직전 미군의 폭격에 대비한 거대한 방공호까지 건설하며 궁궐터를 군사 시설로 이용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오늘날에도 궁궐터에는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특별시교육청 건물이 버티고 서 있어 완전한 복원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잊힌 궁궐 경희궁은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을 잃고, 외세와 내부의 요인으로 철저히 파괴된 채 우리에게 진정한 역사 복원이란 무엇인지 무겁게 묻고 있다.